서산대사 명상바위 앞에서 듣는 물소리
이창수
쌍계사 뒤쪽 십여 리에는 지리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불일폭포가 있고 불일폭포로 가는 길 따라 고운(孤雲, 최치원)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불일폭포 넘어가면 단군 시조를 모시는 삼성궁이 있다. 우리가 아는 청학동이 바로 여기다.
17세에 당나라 빈공과에 장원급제한 그는 황소의 난에 참전해 반란군인 황소의 토벌을 호소하는 격문을 썼다. 그러나 국운이 다한 당나라에서 그가 할 일은 없었다. 신라로 돌아왔지만 신라의 처지도 망해가는 당과 다르지 않았다.
고운은 진성여왕에게 올렸던 개혁안인 시무10조가 좌절되면서 화개로 들어왔다. 쌍계사에 머물다가 불일폭포 신흥동을 거쳐 지리산 깊은 골짜기로 사라졌다.
그는 쌍계사에 머물며 진감선사부도탑비를 썼고 화개 신흥동천 계곡에 세이암洗耳岩이라는 각자를 새겼다. 가야산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고운의 흔적은 가야산보다는 화개에 더 많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자에서 개혁에 실패한 뒤로는 쌍계사에서 살다 지리산 곳곳을 전전하며 마지막에는 도학자로 살았다. 고운은 유불선을 차례로 살아 낸 사람이다.
신흥동천에서 승용차로 십여 분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마을이 의신이다. 옛날 화전민들이 살았다는 의신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다. 최여신이 열다섯 살 때 친구들과 화개에 놀러왔다가 여기 원통암에서 머리를 깎았다. 중이 된 그는 의신 마을 바로 뒤쪽 깊은 계곡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서 용맹정진했다. 그 소년은 한국 불교의 큰 기둥이 된 서산대사 휴정이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면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중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함께 승병을 일으켜 호국불교를 실천한 인물이며 시인으로서도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의 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는 김구선생의 좌표가 되었다 한다. "선禪은 부처의 마음이며 교敎는 부처의 말씀”이라는 선禪과 교敎에 대한 명확한 정리는 그의 큰 업적이라 할 수가 있다. 휴정은 유불선을 하나로 보았다는 점에서 고운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p. 296-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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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5월(389)호 <시인들의 사생활_53 시인과 지리산 마니아> 에서
* 이창수/ 시인, 2000년『시안』으로 등단, 시집『물오리 사냥』『긧속에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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