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음악, 쇼팽의 시(발췌)
서영처/ 시인
댄디즘과 센티멘털리즘
쇼팽의 장식적인 선율은 여러모로 댄디즘과 연결할 수 있다. 그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행동거지와 태도는 예술가를 장식하는 미적 수사이며 마른 체형과 매부리코는 예술에 대한 절대적 신념이나 자존심을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댄디즘은 예술가가 작품만큼이나 자신의 삶을 미학적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시도이다. 물론 쇼팽은 스스로를 댄디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삶을 예술처럼 가꾸고자 하는 예술로서의 삶은 자아와 외면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자 상승을 향한 욕구이며 예술 절대주의라는 의식에 닿아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을 벗어나 장식과 기교를 앞세울 때 감상적인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쇼팽의 음악이다. 쇼팽의 음악은 우아한 정신이 세계로 인도하지만 전통적인 정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허무하고 피로감을 주는 음악으로 전락할 수 있다.
쇼팽에게서 센티멘털리즘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 때문에 쇼팽의 세계는 진부한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발생한다. 쇼팽은 철저히 계산하거나 곧이곧대로 정직하게 연주라는 음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달콤한 주제를 나열하는 감상주의나 도취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만큼 아마추어가 소팽의 미학을 제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감상이나 상투성에 머무르면 소팽의 가치는 하락하고 쇼팽의 의의는 추락한다. 앙드레 지드도이러한 점을 지적했다. 바흐나 베토벤 슈만과 리스트는 서툴게 전달되어도 의미가 왜곡되지 않지만 쇼팽은 조금만 흐트러져도 변질되어 버린다. 감상주의는 권태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반짝거리는 쇼팽의 장식음들은 노스탤지어의 파편으로 치부되거나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주는 살롱 음악에 불과하다는 오해를 부른다. 이런 제약 속에서 쇼팽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후회와 슬픔, 가슴 속의 온갖 흉금, 신랄함을 쏟아내며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작품들을 날카롭고 집중력 있으며 무게감을 획득한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p.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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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문파』 2022-여름(64)호 <기획특집/ 음악에서 시를 듣다>에서
* 서영처/ 2003년 『문학/판』으로 등단, 시집 『피아노 악어』『말뚝에 묶인 피아노』, 산문집『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노래의 시대』『가만히 듣는다』등,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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