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음악, 쇼팽의 시(발췌)
서영처/ 시인
쇼팽과 들라크루아
쇼팽은 후에 10여 년을 함께 한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 72)의 살롱에서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Delacroix, Ferdinand Victor Eugene, 1798~1863, 65)와 깊은 우정을 쌓았다. 두 사람의 작품은 형이상학적이고 암시적이며 나르시시즘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고, 음색과 색상의 변화가 일으키는 감정 효과를 이용하여 존재의 내면적 감흥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들은 서로의 작품이 낭만적이고 환상적이며 독창적인 면을 추구하면서도 고전성과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들라크루아는 굉장한 독서가였다. 후에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에게 바치는 미술론, 「1845년 미술전」에서 "고금을 통해 가장 독창적인 화가"라는 찬사를 보냈다. 들라크루아는 사교계에 드나들면서 쇼팽과 친분을 쌓았고 쇼팽의 음악을 들으며 섬세한 사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들라크루아는 역사화를 많이 그렸다. 낭만주의 회화의 대작 <키오스섬의 학살>(1824)은 그리스 독립전쟁을 주제로 삼았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 28일>은 프랑스 국기를 든 여신을 통해 7월 혁명의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1831년 쇼팽은 바르샤바에 러시아가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에튀드 <혁명>(op.10-12)를 작곡한다. <혁명>은 <폴로네이즈 6번 '영웅'>과 함께 격렬하고 비통함이 느껴지는 곡으로 과거 폴란드의 영광과 러시아의 압제에 신음하는 조국의 비애를 담았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쇼팽의 <혁명>, <영웅>은 장중하고 드라마틱한 역사의 한 장면을 들려준다. (p.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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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문파』 2022-여름(64)호 <기획특집/ 음악에서 시를 듣다>에서
* 서영처/ 2003년 『문학/판』으로 등단, 시집 『피아노 악어』『말뚝에 묶인 피아노』, 산문집『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노래의 시대』『가만히 듣는다』등,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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