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에서 시를 듣다(발췌)
성기완/ 시인, 뮤지션
사라짐, 터울림, 전체
리듬은 비트들이 만들어내는데 그 비트는 사라짐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꺼지지 않는 비트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라짐은 비트의 존재 조건이다. 한번 시작된 소리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이론적으로 한 번 떨린 파장은 영원히 0의 상태, 다시 말해 궁극적인 '리퀄리브리움(Equilibrium)-평형상태'에 도달하지 않는다. 한번 움직인 목숨은 영원히 떠돈다. 그러나 그 목숨은 지각되지 않을 만큼의 작은 파장으로 숨을 죽이며 사라진다. 그것이 죽음이다. 소리는 사라짐이라는 본질적인 위爲, 또는 무위無爲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한다. 소리가 사라진다는 건, 없어진다기보다는 전체로 '퍼진다'는 뜻에 가까우리라. 나는 이처럼 퍼져 나가 전체 안에 수렴되는 소리를 '터울림'이라고 이름 지은 바 있다.
터울림은 개별 존재와 그 터전이 대화한 결과다. 목숨을 지닌 영혼은 죽음을 통해 전체로 복귀하면서 물질적인 개별성을 내어준다. 그 짧은 틈들이 명멸하며 다양한 비트들을 구성하고, 그것들이 수많은 장단을 만들어낸다. 이 사라짐은 덧없는 것이기도 하고 영원히 상승 또는 하강하는 나선의 회전력을 발진해 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긴 침묵을 청하는 쉼표 하나를 마주한다. 우리는 과연 '말하기 위해' 시를 쓸까, 말하지 '않기 위해' 시를 쓸까. 힘들의 자기장이 그려내는 보이지 않는 곡선들처럼, 말과 말 '사이'에 시가 존재한다. (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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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문파』 2022-여름(64)호 <기획특집/ 음악에서 시를 듣다>에서
* 성기완/ 1994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유리이야기』『11월』, 산문집『도살장 풍경』외 다수, 뮤지션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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