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해방기 문학의 자원: 한국어 문자 혹은 한글(발췌)/ 정과리

검지 정숙자 2022. 4. 20. 18:00

 

    해방기 문학의 자원:

    한국어 문자 혹은 한글(발췌)

 

    정과리/ 문학평론가

 

 

  문학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조선 사람들이 상용해야 할 말과 그 말이 문자였다. 즉 한국어와 한글이 국어의 지위를 회복한 것이았다. 그 반대편에서 일본어는 한반도에서는 더 이상 국어로서 기능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대전에서의 패망과 더불어 일본어는 세계어가 될 가능성도 망실하게 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해방 직후 발간된 청록파의 얇은 시집과 윤동주 수고본이 압도적인 중요성을 띠고 떠오른 것이었다. 1930년대 말기에 『문장』지를 통해 등단하였으나, 조선어 말살 정책에 의해 시를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해방 후에 그동안 '서랍 속에 들어 있던' 몇 편의 시들을 모아 발간한 이 시집을 두고 사람들이 주목한 건 그것이 오로지 '발표되지 않은 상태의 한글'로 발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의 혐의로 체포되어 사망한 윤동주가 1947년 갑자기 부각된 것도 그가 남긴 수고본 한글 시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강처중에 의해 ⟪경향신문⟫ 1947년 2월 13일자를 통해 윤동주의 존재가 드러난 지면에서 당시 신문의 주필이었던 정지용은 짧게 소개문을 썼고, 이어 1948년 1월에 간행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 강점기에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9)?

 

  그러다 보니, 세심한 내면의 시를 남긴 윤동주의 존재를 두고, 일제 말을 '레지스탕스의 시기'라고 부르자는 주장10)까지 나왔던 것이다.

  윤동주와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의 공통점은 두 가지이다. '한글'과 '미발표'이다.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순수한 상태로 남은 한국문학의 자원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이 한글은 실로 어떤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던가? (p. 155-157)

 

  9) 정지용, 「서」    랄 것도 없이(1947. 12. 28), 심원섭 외(편), 『원본대조 윤동주 전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300쪽.

  10) 백철, 「암흑기  하늘의 별」, 같은 책,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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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2-3월(387)호 <기획연재 50/ 정과리의 시의 숲속으로>에서/ 

   * 정과리/ 문학평론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를 통해 평론 활동을 시작, 저서『문학, 존재의 변증법』『스밈과 짜임』『문명의 배꼽』『무덤 속의 마젤란』『들어라 청년들아』『뫼비우스 분면을 떠도는 한국 문학을 위한 안내서』『'한국적 서정'이라는 환을 좇아서』등 다수의 평론집, 문명에세이, 연구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