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오규원 시론을 읽은 하나의 방법(부분)/ 최현식

검지 정숙자 2022. 4. 30. 17:03

 

    텅 비어 가득한 세계와 언어들(부분)

      - 오규원 시론을 읽는 하나의 방법

 

     최현식/ 문학평론가

 

 

 ▣ '현상적 사실'의 꿈과 '새로운 조화'의 세계

 오규원의 영면과 더불어 '날이미지'를 휘감고 흐르던 '눈'과 '눈'은 더 이상, 의미 있는 미학적 충격과 흐름을 생산하기를 멈췄다. 그러나 이광호의 '투명성의 시학', 문혜원의 '이미지 시론의 영역 확장', 오연경의 '탈원근법적 시각의 형이상학'과 같은 평가에서 보듯이, '날이미지'의 시학은 식민 권력처럼 작동 중이던 인간 중심의 사유와 상상력, 시선과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회의와 비판에 날카롭고 속도감 넘치는 활시위를 당겼다. 그럼으로써 다음과 같은 '시적 정의'에 대해 누구라도 동의할 만한 숙고와 실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우리의 영혼은 전적이고 절대적인 통제에 갇히거나 또는 그런 세계로 인간을 몰고 가려는 의식이나 의지와는 다른 부드럽고 열린 존재여서 균열이 나고 상처가 생기지만, 그 균열과 상처가 세계와 어울려 새로운 조화를 이룩한다."(V: 122)

  "균열과 상처"의 방법론으로 "새로운 조화"를 시의 현재로 살고자 했다는 점에서 오규원은 천생 시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기억될 만한 것은 그 언어와 영혼의 모험이 은유적 언어 체계가 지배적인 '다양성의 세계'를 넘어, 환유적 언어 체계의 개입과 실천을 요청하는 "혼란의 세계"(V: 122)를 향해 조준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시인은 "진리는 동사로 발견되고 서술되기도 한다"는 시적 혁신의 욕망을 "진리는 명사로 명명되고 대치된다"(IV: 25)는 서정시의 오랜 전통에 맞세우고자 했다. 이 명제에서 우리가 암시받아야 할 바는 분명하다. 시인의 '날이미지시'에 대한 동의나 거절의 선택은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습화된 사실과 전통에 대한 매일매일의 성찰과 혁신만은 결코 늦추거나 거부할 수 없는 시의 길이자 윤리이다. 오규원의 '날이미지' 시론이 여전히 현재적인 진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p. 167-168)

 

 

  참고) 필진: 박동억  선우은실  안지영  강보원  박형준  이날  최현식  소유정  문혜원  홍성희  김언  세스 챈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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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규원문학회 기획『끝없이 투명해지는 언어/오규원의 현재성과 현대성』에서/ 2022. 3. 21. <문학과지성사> 펴냄

 * 최현식/ 문학평론가, 199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 시작. 연구서『서정주 시의 근대와 반근대』『한국근대시의 풍경과 내면』『신화의 저편: 한국현대시와 내셔널리즘』『최남선·근대시가·네이션』, 평론집『말 속의 침묵』『시를 넘어가는 시의 즐거움』『시는 매일매일』『감응의 시학』등. 현)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