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정숙자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유령시티」/ 작품론 : 정다인

검지 정숙자 2016. 4. 6. 21:58

 

 

   『시와경계』2016-봄호

[지난 계절의 시 리뷰]/ 정다인(시인)

 

   

     유령시티

 

     정숙자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간혹

   아주 간혹

 

   있었다

 

   대개 허수였다

   그들은 반짝거렸지만 알 수 없었다

   눈 어딘가 알 수 없음을 품고 알 수 없는 사이 스며들었다

 

   파릇한 손이라도 나눠 갖는 저녁이면 한층 무거운 내일이 왔다

   사람사람이 (알 수 없음이) 알 수 있음이 되어갈 무렵

   그들은 불현듯 어둑한 패를 펼치곤 했다

 

   모든 이들이 모두 사람인 줄 알았던 때

   (언제라도 꼭)

   이곳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

 

   했었다 

 

   천사란 정말 날개 돋친 종족일까?

   무차원적 신체, 과연 인간으로선 가닿을 수 없는 존재일까?

   감겼다, 오해였다

   천사란 변질되지 않는 보통의 인간, …이다

 

   아무리 척박할지라도 인간이 곁에 있다면 이 지구는 손색없다

 

   인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간혹

   아주 간혹

 

   있었다

 

   한때 천사가 아니었던 얼굴은 없다

 

   유령이 출몰하는 만큼 도시의 빈혈, 깊어진다

     -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2015-겨울호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더운 피가 흐르는 피부와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들어있다. 그 말은 우리의 기원이며 미래다. 사람은 사람이어서 웃고 떠들고 슬퍼한다. 우리 눈앞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흘러가는 사람, 머무는 사람, 혹은 싫어하는 사람. 그들 모두 사람이라는 커다란 원 안에 살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무표정이 넘쳐흐른다. 사람이라는 허물을 뒤집어쓴 낯선 존재들이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이지만 우리가 아니다. 우리라는 말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낯선 존재들은 과연 누구일까. 때로 얼굴을 부비고, 팔짱을 끼고 흩어졌다 모이고 또 흩어지는 사람들. 사람이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차갑고 낯선 또 다른 '사람'을 향해 누군가 손을 내밀고 있다. 자꾸만 사람이라는 말의 문을 열고 그 안을 더듬는다. 한 때 뜨겁고 힘차게 뛰었던 '사람'이라는 말 속으로 자신의 피를 흘려보낸다. 이 시는 사람이라는 허물을 오래 쓰다듬고 있는 한 시인의 온기다.

 

  멸종, 우리는 오래 전부터 멸종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살고 있는 우리는,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간혹/ 아주 간혹// 있었다'라는 화자의 말처럼 우리의 세상에서 '사람'은 희귀종이다. 우리를 보고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개 허수였다/ 그들은 반짝거렸지만 알 수 없었다/ 눈 어딘가 알 수 없음을 품고 알 수 없는 사이 스며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없다.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우리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고, 원시림보다 더 깊은 익명을 거느리고 있다. 웃고 있다고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등을 보이고 돌아서는 순간 우리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난무하는 폭력과 파괴 속에 우리는 속해 있다. 그 안에서 화자는 작은 풀꽃 같다. '모든 이들이 모두 사람인 줄 알았던 때/ (언제라도 꼭)/ 이곳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 했었다'라는 말은 손톱보다 작은 꽃을 달고 있다. 이 시에서 2연, 6연, 10연의 '있었다', '했었다', '있었다'를 따로 연구분 해놓은 부분에서 우리는 잠시 화자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혼자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멸종의 시간을 향해 화자는 기도하듯 거기 빈 공간에 자신의 숨결을 걸어두었다. 몇 번쯤 다시 읽어야 그 숨을 우리의 심장 안에서 돌릴 수 있을까.  

 

  '천사란 정말 날개 돋친 종족일까?' '천사란 변질괴지 않는 보통의 인간, 이다'

  이 문장은 화자가 우리에게 드리우는 끈이다. 가늘고 끊어지기 쉬운 화자의 중얼거림으로 엮인 끈, 우리가 잡기를 바라는 화자의 간절함이다. '한때 천사가 아니었던 얼굴은 없다'라고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화자를 바라보자. 우리 안에 힘겹게 버티고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들여다보자. 멸종되어가는 우리 안의 '사람'. 더운 피가 흐르는 따뜻한 '우리'가 아직 우리 안에 살아있다. 무표정과 무관심과 익명으로 포장된 우리의 껍질을 녹이고 있는 화자의 숨결을 들이자. '인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간혹/ 아주 간혹// 있었다' 이 말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리 속의 인간이기도 하고, 한 인간 안에 남아있는 '사람'이라는 인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간혹/ 아주 간혹'이라는 말에 담긴 슬픔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라져버린 우리의 허물을 뒤집어보면 '간혹/ 아주 간혹' 우리가 발견될까. 위태로운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만큼 일까.

 

 

  * 정다인/ 경남 진주 출생, 2015년 『시사사』로 등단. 웹진 『시인광장』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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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시와경계』2016-봄호

 <정다인_지난 계절의 시 리뷰>에 수록된 시인과 시

  정숙자 _ 유령시티

  김영찬 _ 불쑥 솟아오르는 still-life, 정물화

  최세라 _ 말더듬이의 사랑

  정수경 _ 시클라멘 시클라멘

  황주은 _ 클라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