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정숙자
인간을 통해 갖가지 의지를 표출하는 신
그는 정작 지상에 태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다
물이 든 유리병을 공중에 심었다
유리병에선 곧 뿌리가 나고 이파리도 나풀거릴 것이다
유리병나무가 된 유리병은 머지않아
물 먹은 뿌리와 잎새들을 흔들어
젖음이 뭔지
따뜻함이 뭣인지
내 사막의 별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근거 없는 쓸쓸함이 쌓일 때마다
나는, 내 수호신의 하늘에 유리병을 던진다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방향이 되는
그 누구도 알 리 없는
성층권 너머 유리병 하나
유리병 가득히 물 말고도 무엇이 샘솟는지는
내 수호신과 미확인 입자들과 유리병만이 알고 있지만,
빗방울 소리가… 빗방울 소리가… 빗방울 소리가… 유
리병나무에서 떨어지는 그 파란 빗방울 소리가… 주름
진 사막의 심층부까지 콸콸… 콸콸… 콸콸 … 콸콸… 물
길을 열어 휘파람새, 찌르레기, 버섯류들도 되살려 내고
는 한다.
균열은 신과 인간의 시공간 통로
간절한 포옹
비극보다 깊은 밀애
우리는 서로를 대신해 죽음을 견딜 수도 있는 것이다
-『시담』2016-여름호(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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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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