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니체들
정숙자
그들, 발자국은 뜨겁다
그들이 그런 발자국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그런 불/길이 맡겨졌던 것이다
오른발이 타버리기 전
왼발을 내딛고
왼발 내딛는 사이
오른발을 식혀야 했다
그들에게 휴식이라곤 주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도움이 될 수도 없었다
태어나기 이전에 벌써
그런 불/길이 채워졌기에!
삶이란 견딤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목록은 자신이 택
하거나 설정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었으
므로 왼발과 오른발에 (끊임없이) 달빛과 모래를 끼얹을
뿐이었다.
우기雨期에조차 불/길은 지지 않았다. 혹자는 스스로,
혹자는 느긋이 죽음에 주검을 납부했다…고, 머나먼… 묘
비명을 읽는 자들이… 뒤늦은 꽃을 바치며… 대신… 울
었다.
늘 생각해야 했고
생각에서 벗어나야 했던 그들
피해도, 피하려 해도, 어쩌지 못한 불꽃들
결코 퇴화될 수 없는 독백들
물결치는 산맥들
강물을 거스르는 서고書庫에서, 이제 막 광기에 진입
한 니체들의 술잔 속에서… 마침내 도달해야 할… 불/길,
속에서… 달아나도, 달아나도 쫓아오는 세상 밖 숲속에
서.
-『시인동네』2016-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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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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