暮秋*/ 정숙자 暮秋* 정숙자 파란 거울 속 봄타던 색동소매 어디에 있는가 강물도 장승도 거진 비운 마음 몰린 바람만이 부대끼는 저 팽나무 꼬리 다친 한 잎 구름 저혼자 떨고 있다 -전문- *暮秋(모추): 늦가을. 음력 9월을 달리 이르는 말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한국문..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31
자목련/ 정숙자 자목련 정숙자 과식한 고독 부종든 연필 “고만 불 끄고 자거라, 자거라” 선친의 기침소리 들을 넘을 때 어듬더듬 염불 묻은 발자국 되짚어 가면 겉보리 두어 됫박에도 모자라는 체중 자목련 나무 三冬 내내 꿈만 깁고 서 있다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l..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30
오월의 음영/ 정숙자 오월의 음영 정숙자 밤새 솟은 더듬이 날개 파닥이는 태양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쥐고 구름이 깊다 자수정 목걸이 매끈하던 두릅순 불꽃처럼 벌어져 버린 오월도 하순 빙 둘러 이빠진 우표 파발마의 눈썹 들여다보며 김 약국집 셋째 딸 김 약국집 셋째 딸 그러나 태양은 아직 미소년 철썩..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29
쑥국 쑥국 쑥쑥국/ 정숙자 쑥국 쑥국 쑥쑥국 정숙자 깊어진 눈 떴다 감을 뿐 그러나, 거기 흐르는 눈물 식혀주는 바람과 구름 하늘은 됫박머니 시절 내 자란 곳 부용에서도 그랬었다 소금꽃 흘러내리던 선친의 적삼··· 대 끊긴 무덤을 넘어 외로이 울음 운 쑥국새 쑥국 쑥국 쑥쑥국 박 속 파내듯 여름 내내 산과 산을 감고 있었다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부용(김제군)에서 태어남,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28
동생과 나/ 정숙자 동생과 나 정숙자 코스모스 참새, 동생과 나 안과의의 막대기가 짚어준 시력을 벗어난다 여기는 서울, 강남도 시골 껍질만 뜬 달을 석류알 입에 문 듯 참이슬이 집 짓고 지키는 아침 낮과 달을 깎아서 보낸 이야기, 웃으면서 걷는 슬픈 이야기 열 몇 살 때이던가 마당가에 굴러간 콩 줍던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27
항아리/ 정숙자 항아리 정숙자 소 무 배추 곁에서 태어난 모양 그대로 항아리가 앉아 있다 분이는 벌써 돌아갔지만 처음부터 속이 빈 항아리 입가에는 아직도 주름이 지지 않았다 왱그랑 땡그랑 풍경 속 잉어 떼가 바람에 낀 먼지를 털어낼 때도 본관을 흙에 둔 조선 항아리 산이나 들 하늘과 사돈 앞뒤로 둥글게만 믿고 싶었다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부용(김제군)에서 태어남,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26
소월의 접동새/ 접동새 소월의 접동새 정숙자 내일이면 군화 신는 아들 생각 간절한 접동새 그 아들 첫 휴가 땐 사막도 넘어다닐 낙타되어 나타날까 군번은 아들 몫인데 먼저 훈련받는 에미는 오늘 素月의 접동새 콩꼬투리 모더니스트가 아니어도 순수 서정시인이 아니어도 에미는 오늘 속절없이 피가 마르는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25
우리 고향 팽나무/ 정숙자 우리 고향 팽나무 정숙자 뼈마디 몇 개 내어놓고 살았다 큰무당 열병들어 찢겨나간 하늘 뺑덕어멈 늦도록 웃다가 잠든 지붕도 우리 고향 삼백 살 넘은 팽나무는 그러려니, 하고만 바라보면서 너호 너호 에이넘차 너호 너호 너호 에이넘차 너호 노랑색 남색 부화하는 별 팔 안에 들여놓고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24
선친의 기일/ 정숙자 선친의 기일 정숙자 옹퉁이 논, 그 겨울 논 혼자서 객토하시기도 한 아버님 생애 잊혀지는 우리 친정집 대낮에도 달내음 배어나던 그 분의 등에 괸 소금을 먹고 나는 부전나비라도, 풀무치라도 되는 양 나부댔었네 어떻게 걸어야 그런 그림들 단군신화나 고려가요, 춘향전보다도 한 뼘은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23
삼우제/ 정숙자 삼우제 정숙자 사진틀에 난 까아만 철길 골목 골목 흩어진 발자국 한 점도 흘리지 않은 저승의 그 길 소금쟁이, 풀무치, 실바람… 축전처럼 쇄도하는 추억 깊거나 얇거나 잔디 밑 한 치 종 울리면 누구든 채색 다 못하고 일어서는 도공인데 굴절된 하늘 펴지지 않는 오늘은 상주가 앞이 없..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