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맥/ 정숙자 산맥 정숙자 온갖 바람 드나드는 산맥 어디엔지 허물을 벗어놓고 자리 뜨는 지빠귀, 푸른 뱀, 쑥국새 줄지어 열린 꽃 이기지 못하는 금낭화 테만 남은 달 보듬어 안고 거울 한 잎 끼워넣는 아기 기러기 부질없는 무덤 목에 건 골짜기 가으내 가으내 혼자서 고개 넘는 구름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10
종/ 정숙자 종 정숙자 숨소리 고른 호수 먹물 찍어 그려도 투명하게만 떠오르는 가을 달 모양 엊그제 새로 장만한 차 바퀴도 모자도 사기 찻잔도 비우고 두드리면 성불사의 종, 그 흙 냄새 가득한 어머니 손금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한국문연> 펴냄 * 정숙자/ 1952년..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09
돌을 보며/ 정숙자 돌을 보며 정숙자 돌일망정 단군 할아버지보다도 한두 살은 위일테지 채이고 묻힌 굴곡 얼마였을지 다시금 채이고 깨어져 어딘가에 묻힌다면 그때엔 또 무엇이 될지 개와집 서까래 하늘에 두고 밭자락에 손수 지으신 선친의 흙집에서 대 선배님 돌멩이에게 눈맞추는 초여름 우주가 한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08
비비추/ 정숙자 비비추 정숙자 전통 서정주의 가슴 가득 사는 비비추 펴고 깎은 선덕여왕 혹은, 이조의 마지막 상궁 그리고 고독 신의 심부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는 넘어질 때마다 비틀대며 일어서는 단 하나의 삶의 방식 보라, 줄기에 흘러 핀 말없음표 채색하여 내보낸 눈물 老子의 길 바라만 볼 뿐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07
대나무 속/ 정숙자 대나무 속 정숙자 풀씨 한 알보다 오달지지 못한 서방님 발소리 매양 담 밖에 맴돌아 모악산 그늘 시오리 짙게 배어든 속적삼 단추 풀면 어느 달에 익었을까 수밀도빛, 빌린 연꽃 觀世音 觀音宅 저만치서 모로 꼰 눈길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한국문연>..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06
망우초/ 정숙자 망우초 정숙자 묵향 욱욱한 조선 오백 년 사대부집 족보는 아닐지라도 초가삼간 웃음소리 넉넉한 살림과 함께 해 온 얼굴 한겨울 베옷으로 지낼 줄도 안 인현왕후, 혜경궁 홍씨 모시타래 마냥 희어버린 고향집 어머니 뒤돌아보듯 연녹색 치마 땅에 이끌며 설풋이 지는 해 적시는 신라 와..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05
유월 그리메/ 정숙자 유월 그리메 정숙자 풀각시 윤기 흐르는 유월 초하루 늘상 구겨져 그림자 골 깊은 압구정동의 태양 그러나 盤浦川 따라 지렁이도 산책하는 오솔길엔 王羲之의 서체로 벋은 덩굴장미의 방화 꼬깃꼬깃 간직한 이름 하나 꺼내지 못하는 여염이건만 어느 귀신의 호리병 열렸음일까 정수리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04
저녁에 바라는 강/ 정숙자 저녁에 바라는 강 정숙자 속마음 어디든 마슬 때에는 걸고 다니자 그런 터에야 제아무리 거친 해 뜨고 달 지기로 한 치 반 치 다칠 일 있나 낮에 본 산 저녁에 바라는 강 서너 개 뽑아내며 별주부전 다시 읽는 그런 한 때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한국문연&g..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03
우리 토담밭/ 정숙자 우리 토담밭 정숙자 한순간 쩍, 벌어질 밤숭어리 그래도 그날까지야 조상의 맑은 위패 맡았던 선친 우수리로 걸린 낮달처럼 어리벙한 딸 혹시나 한눈팔다 발목 삘까 하늘 반 흙 속에 절반 풀무덤은 오늘도 밤숭어리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한국문연>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02
가을에 움트는 햇빛/ 정숙자 가을에 움트는 햇빛 정숙자 어딘지 모를 우주사 떠도는 한 개 깃털이지만 다북쑥 도꼬마리 까치들의 하늘은 웅덩이에 빠져도 마냥 푸른색 마디마디 꿈 박힌 밤기차가 수맥을 울리고 산기슭 열면 寒暑飢渴 넘으면서도 호두 한 말 빚어낸 잎새, 도솔천 가는 그 잎새들 이브도 환웅도 업어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