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전제로/ 정숙자 독립을 전제로 정숙자 구석 구석 강남콩 줄거리는 독립을 전제로 한다 창문을 달기 위한 바람벽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다지고 깎아 올려야 할 어두움 텅 빈 우주도 견딜 수 있는 고독만이 별똥별 아닌 별로 남아 외로운 길라잡이의 눈이 되노니 하늘 보라고, 하늘 보라고, 해마다 기러기는..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24
습지식물/ 정숙자 습지식물 정숙자 산을 찾는 구름 오늘도 카프카의 케이처럼 떠돈다 작은 배에 보름달 싣고 신을 생각하던 타고르, 혹은 국민학교 때 짝 섭이 만큼은 심지 곧은 붓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거라곤 뭉개진 하늘 독수리가 긁어댄 조선 창호지 풀꽃과 냇물을 따라 한두 옹큼의 행복 빚어 갖은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23
산/ 정숙자 산 정숙자 산이 구상하고 색칠하고 지켜온 것은 여백이다 돌아간 무대 표지의 안팎 장례식 뒤의 하늘까지도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한국문연>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부용(김제군)에서 태어남.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22
빗방울/ 정숙자 빗방울 정숙자 푸르스름하고 쫑긋쫑긋하고 아기 옹알이같이 이쁜 빗방울 땅 위에서는 제일 깨끗한 강물이 되려고 풀에 내린다 달개비꽃 바라귀풀꽃 잠자리가 쉬어간 들패랭이꽃 그리고 몇 방울은 하늘의 마음 그 꽃 속에 들어가 꽃씨가 된다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21
그리스도의 발자국/ 정숙자 그리스도의 발자국 정숙자 언제나 반듯한 길 그 언저리를 또한 중심부를 밤낮 없이 더듬는 눈길 한양오백년가의 日本刀처럼 대물린 가난처럼 숨어드는 三枝槍 그림자 손 발 옆구리 흔들어댄 바람일수록 절하며 맞이하고 배웅한 나무 한 치의 땅도 뒤흔들려 제대로는 서 본 적 없는 황톳길 깊은 발자국 어둠의 급소 알린 조각달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부용(김제군)에서 태어남.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16
李箱의 달빛/ 정숙자 李箱의 달빛 정숙자 저 달은, 또 정신분열증세 무수한 면도날을 집어들었다 웃고 있는 사나이 저 달은 최고로 무서운 계집처럼 파고든다 일요일, 모든 별들 간호사의 눈을 하고 집기를 닦는다 천재가 마취된 수술실은 강렬한 불빛만이 조용하다 -------------- * 시집 『정읍사의 달밤처럼』에서/ 1998. 3. 3.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부용(김제군)에서 태어남.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15
어딘가 있을 하루/ 정숙자 어딘가 있을 하루 정숙자 긴 복부 어딘가 있을 하루를 찾아 홀로이 가시 세워 흐르는 강물 태양이 풀어 버린 열두 달 언제나 새로운 곡선의 파충류 파충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님, 그리고 나도, 두꺼비가 배를 파먹어 어제오늘 허옇게 누운 낮달도… -------------- * 시집 『정읍사의 달..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14
맹금류/ 정숙자 맹금류 정숙자 사랑하면서도 먹는다, 는 그 점이 마음에 걸린다 성충이 되면 식사하지 않는 나비는 그 모습 만큼이나 고등한 종족 입맞춤의 황홀 머금은 날 스테이크, 우동, 수박… 동물임을 확인하는 永久齒 루즈를 칠하고 때로는 서정시를 꼽기도 하지만 서른두 개의 핵탄두 보유한 맹..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13
앎의 비애/ 정숙자 앎의 비애 정숙자 어딘가로 달아난 궁금증 시보다 세상을 먼저 읽었다 뿔 솟은 사슴 외엔 어떤 짐승도 얼굴이 없는, 여기 에덴의 뒤꼍에서 머루순 같은 고전적 사고는 이제 청동 장미꽃, 또는 그 줄기처럼 부식되었다 인생은 추고에 추고 서로를 문지르는 지우갯밥 땀으로 익히고 턴 곡식..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12
한가람의 달/ 정숙자 한가람의 달 정숙자 관절염 앓는 한가람 무릎 언저리 언젠가 본 보름달 약속이란 지켜본 일 없는 사내 마음에 저당잡힌 서울 여인들 오뉴월에도 서리오는 바이러스를 그리로만 흘려보내 들쥐 소굴된 성황당 속살 물리학자 평화주의자 펄랭이 점쟁이 어디서 무엇들 하고 있기에 뇌종양 .. 제6시집 · 정읍사의 달밤처럼 201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