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5605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2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2      정숙자      당신은 깊은 ᄉᆞᆫ 메아리처럼 저자에 나오지 아니합니다. 제 발목엔 무엇이 채여 당신께 날아갈 수 없는 걸까요. 스스로 짚은 게 ᄋᆞ닌… 영문도 모르는 수형受刑에 갇혀… 그리움만이 몸을 놔두고 바람에 섞였습니다. (1991. 1. 16.)               외로울 때 읽어야 진짜책이지 푸른 먹물이걸러낸볕뉘 그걸 먹고 입고 거닐며접때도 오늘도 남은 파도도   -전문- --------------* 웹진 『시인광장』 2024-9월(185)호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2/ 정숙자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62      정숙자      당신은 깊은 ᄉᆞᆫ 메아리처럼 저자에 나오지 아니합니다. 제 발목엔 무엇이 채여 당신께 날아갈 수 없는 걸까요. 스스로 짚은 게 ᄋᆞ닌… 영문도 모르는 수형受刑에 갇혀… 그리움만이 몸을 놔두고 바람에 섞였습니다. (1991. 1. 16.)                 외로울 때 읽어야 진짜 책이지  푸른 먹물이 걸러낸 볕뉘  그걸 먹고 입고 거닐며 접때도 오늘도 남은 파도도   -전문-  -------------- * 웹진 『시인광장』 2024-9월(185)호*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공검 & 굴원』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등

신상조_불안(발췌)/ 고요야 까마귀야 : 정우영

고요야 까마귀야      정우영    밤새 큰 눈이 내렸다. 집과 길, 여기와 저기의 분별을 지웠다. 풍경들은 다만 새하얗고 펑퍼짐한 경계선을 그릴 뿐, 그 무엇도 딴소리를 내지 않는다.   말라비틀어진 장미도 얽혀 있는 전깃줄도 추위에 떨던 허기도 다 단란하게 가라앉아 고요라는 한 음절로 차분하다. 날카로운 작설雀舌조차 착실하게 평화롭고,   그러니 까마귀야, 철없는 바람아.  네 눈과 귀가 함께  보고 들은 풍문*은 정녕코 묻어놓아라.   천연天緣을 앓다 어느 날 갑자기 우두둑,  지구가 통째로 뒤집힌다고 해도.     -전문-    * 최근 3년 동안의 풍문 아닌 풍문을 살짝 털어놓을까. 2021년에는 중동 지역의 사막에 폭설이 쏟아졌고 독일 라인강은 백년 만에 대홍수를 일으켰으며, 2022년에는 ..

망(茫)/ 채상우

茫     채상우   돌멩이는 돌멩이대로 박혀 있고 애기별꽃은 아기별꽃대로 피어 있다 그 옆에 또 나는 나대로 앉아 있다 반나절 건너 작년처럼 재작년에도 그랬듯   비로소 찬연하구나   거기에는 전생이나 후생이 없었다    -전문(p. 80)    -------------------  *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호  에서  * 채상우/ 2003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멜랑콜리』『리튬』『필』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장미/ 함태숙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장미      함태숙    투명 실린더 안에 있었죠  측량하고 싶은가요  이 시대를   눈금의 영도는 사회적 온도일까요  유토피아라면 이 모든 것이 모조리 가짜이겠지만요   난처한 듯 그러나 진심을 다한 어색함으로 앞섶에 찌른 손을 빼서   운명이 다가오듯이   온 우주가 떨리네요  우리는 한계에서 각자의 얼굴을 주워요   체처럼 밀림의 손가락들이 다 잘리고  극동의 드럼통 안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사라진 지문 같은 불가항력의 손가락으로   누구를 증언합니까  물결은 무엇을 삼키고 무력한 표면입니까  저는 시간의 중독을 시간의 의지로 읽고 싶지 않습니다   투탕카멘의 관처럼 일어선 투명한 벽 속에  두 팔을 엑스자로 (상징은 크리스트인가요? 종교적 상상력도 우리를 열등하게 유목화시킵니..

어느 새벽/ 강인한

어느 새벽     강인한    깊 은 강 잔잔한 물소리 들린다  내 곁에 잠든 아내.   내가 당신 속을 끓게 한 말들  당신이 나를 미치게 한 옛날도   더러는 굽이치는 흐름이었네.   가난하고 순한 젊음에 반짝  이 새벽 촛불 하나 드리고  싶다.   우리 집 세 마리 토끼를 위해  공판장에서 과일을 머리에 이고 오던 걸음  오명가명 한 시간.   어머니 떠나시고  장독의 상한 간장 죄다 바가지로 퍼내 버린  아내의 가을도   함께였다, 50년······     -전문(p. 48)  -------------------  *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호 시> 에서  * 강인한/ 1967년⟪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장미열차』등 12권, 시선집『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비평집『백록..

죽도록, 중랑천/ 이소연

죽도록, 중랑천      이소연    여름엔 속이 훤히 보인다  당신이 그만큼 맑다는 뜻이다   어디 모래가 많은지  어디 안장 없는 자전거를 버렸는지  내가 다 안다고 믿는다  당신이 이렇게나 맑은데  모르면 다 내 잘못이겠지  기록하지 않는 이 밤 어디쯤  물고기 떼처럼 리듬체조를 한다   기록하지 않는  이 밤 어디쯤에서   당신은 나를 비난한다  잔소리 좀 그만해!  그런데도 우리는 중랑천을 걸으면서  '다정한 것이 무엇일까'  '다정은 어떻게 생겼나'   물소리가 소음이구나  불어난 중랑천이 장관이구나   여름이 흙탕이다  당신이 그만큼 엉망진창이란 뜻이다  속을 모르겠다   화낼 건 다 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이 섞여 흐른다  6호 태풍 카눈이 지나..

2월 29일/ 이병일

2월 29일     이병일    그레고리력은 4년에 한번 2월 29일을 만든다  365일 5시간 48분 46초,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인데  왜 빛은 어스레하면서 밝은 얼룩이 될까  지구의 사고방식은 반복이다  반복만이 빛이 없는 곳에도 숨을 내어준다   2월은 양분 뺏겨 쭈그러든 씨감자에게 숨을 숱인다  짓물러 썩어 가는데도 숨 막히는 뿔을 세우게 한다  밥알을 흘리면서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이  흘린 밥알을 몰래 주워 먹는 오후가 있듯  2윌 29일은 쥐띠 용띠 원숭이띠에 들어앉는다  들어앉는다는 것이 기쁜다   오늘은 내가 죽어 달이 없는 날이다  그 어떤 것도 해코지를 하지 못할 것만 같다   달도 하필 이 순간에 죽고  나 없는 세상에서 2월 29일이 돌아왔다  울타리 넘어 돌아오지 ..

이구한_실존의식과 존재의 현상(발췌)/ 국어선생은 달팽이 : 함기석

국어선생은 달팽이      함기석    당나귀 도마뱀 염소, 자 모두 따라해!  선생이 칠판에 적으며 큰소리로 읽는다  배추머리 소년이 손을 든 채 묻는다  염소를 선생이라 부르면 왜 안 되는 거예요?  선생은 소년의 손바닥을 때리며 닦아세운다  창 밖 잔디밭에서 새끼염소가 소리친다  국어 선생은 당나귀  국어선생은 도마뱀  염소는 뒷문을 통해 몰래 교실로 들어간다  선생이 정신없이 칠판에 쓰며 중얼거리는 사이  염소는 아이들을 끌고 운동장으로 도망친다  아이들이 일렬로 염소 꼬리를 잡고 행진하는 동안  국어선생은 칠면조  국어선생은 사마귀  선생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소리친다  당장 교실로 들어오지 못해? 이 망할 놈들!  아이들은 깔깔대며 더욱 큰소리로 외쳐댄다  국어선생은 주전자  국어선생은 철..

담쟁이/ 송하선

담쟁이      송하선    담쟁이는  벽인지 나무인지도 모르고  한평생 기어오르고 있었네   벽인지 나무인지  교회의 첨탑인지도 모르고  무언가 구원의 손길을 찾아  한평생 기어오르고 있었네   그렇지만 이제  허위 허위 더는, 힘겨워서 더는  기어오를 곳이 없게 되었을 때  담쟁이는 그때 비로소 알았네   그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신神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전문(p. 114)    ----------------  * 반년간 『미당문학』 2024-하반기(18)호 > 에서  * 송하선/ 1938년 전북 김제 출생, 196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197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유리벽』외 11권, 저서『시인과 진실』외 1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