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시인 함명춘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려 내리는 어느 겨울, 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엔 없었던 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니, 한 두어 번 부러진 연필을 깎을 때였을까 그가 연필을 들고 있을 때만큼은 언제나 바나나 같은 향기가 손에 와 잡히곤 하였다 그는 마을 어귀 가장 낮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마당엔 유난히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넣었다, 그러면 나비와 새들이 하늘에서 날아와 읽고 돌아가곤 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시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은 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인기척이라곤 한 장 낙엽 같은 노트를 찢어대는 소리일 뿐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