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虛의 미학을 창조하는 일 정효구/ 문학평론가 · 충북대 교수 홍수 속에서 식수난을 겪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도처에서 언어가 넘쳐나는데도 우리들의 살림살이는 부박하고 가난하기가 이를 데 없다. 언어가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에는 이미 우리들의 언어는 너무나 깊은 상처를 입고 객지에서 허덕인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현실을 만들어낸 것일까? 나는 이 지점에서 언어를 발하는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살펴본다. 언어란 마음이 만든 산물이자 마음의 연장延長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 우리들의 마음자리를 살펴볼 때, 그곳엔 허심이자 허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허虛의 총량'이 마이너스 지점을 가리키며 위태롭다. '허'란 빈 공간이며, 빈터이며, 빈 세계이다. 무위의 영역이고, 자연성의 길이며, 무상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