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순간들 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멀지 않은 과거의 일들을 자신도 모르게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절망할 때가 많다. 물론 나는 이것을 나이테가 쌓이면서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라고 체념하지만, 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을 상실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까마득하게 먼 과거의 유년 시절의 경험들이 어른이 된 후 내 삶 가운데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몇몇 아름다운 일들과 함께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을 인식하고 향수에 젖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기쁨을 발견한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빛바랜 사진 속의 할머니가 어린 나를 데리고 진외가로 갔던 일이 잊히지 않고 기억나는 것은 그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