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39

옥병(玉屛)/ 취선(翠仙)

옥병玉屛 취선* 冬天如水月蒼蒼 (동천여수월창창) 동구의 하늘은 물인 듯 맑고 달빛도 푸르고 樹葉蕭蕭夜有霜 (수엽소소야유상) 지다 남은 잎에 서리가 쌓일 때 十二擴簾人獨宿 (십이확렴인독수) 긴 렴** 드리우고 혼자서 잠을 자려니 玉屛還羨繡鴛鴦 (옥병환선수원앙) 병풍의 원앙새가 부러웁네 -전문- * 취선(翠仙, 조선시대)/ 호는 설죽雪竹 김철손金哲孫의 소실 ** 긴 렴: 십이확렴十二擴簾=긴 발을 뜻함 (펀집부) --------------------- * 『가온문학』 2021-가을(29)호 에서

고전시가 2022.05.22

유자효_한시의 향기/ 가련기시(可憐妓詩) : 김병연

可憐妓詩가련기시 김병연(1807~1863, 56세) 可憐行色可憐身 (가련행색가련신)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可憐門前訪可憐 (가련문전방가련)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을 찾네 可憐此意可憐身 (가련차의전가련) 가련한 이 내 뜻 가련에 전해 可憐能知可憐心 (가련능지가련심) 가련은 알게 되리 가련한 마음 -전문- ▶ 한시의 향기/ 홍경래 난 때, 순절한 가산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는 제목이 나온 향시鄕試 백일장에서 김병연金炳淵은 장원을 차지했으나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알고는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나섰습니다. 그가 쓴 풍자시 가운데 456편이 전합니다. 소개한 시에서는 사랑한 기생 가련의 이름에 빗대 자신의 마음을 전했으나, 그 사랑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57세에 전라도..

고전시가 2022.05.17

유자효_한시의 향기/ 송인(送人) : 정지상

송인送人 정지상( ?~1135, 인종 13)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둑에 초록은 짙고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남포엔 님 보내는 구슬픈 노래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물이 언제 마르리 別淚年年添綠派 별루연년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 더하는 것을 -전문- ▶ 한시의 향기/ 고려 중기의 천재 시인 정지상鄭知常이 지었다는 절창입니다. 그가 다섯 살 때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누가 흰 붓을 들어 강 물결에 새 을乙 자를 썼노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개경에 머무르고 있던 그는 묘청의 난 때 주요 관련자라는 죄목으로 김부식에 의해 참살됐으니 비록 남자이나 가인박명 佳人薄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승려 묘청은 왕이 황제라 칭할 것과 고구려 고토 회복을..

고전시가 2022.05.16

유자효_한시의 향기/ 추야우중(秋夜雨中) : 최치원

추야우중秋夜雨中 최치원(857 문성왕~?) 秋風惟苦音 추풍유고음 가을바람 괴로이 읊조리나니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적다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창밖엔 깊은 밤 비가 뿌리고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등 앞에 앉은 마음 만 리를 가네 -전문- ▶ 한시의 향기/ 엄격한 신분 사회였던 신라에서 6두품으로 태어났기에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 열두 살 때 당唐으로 유학을 떠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열여뎗 살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급제합니다.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크게 주목받고 황제로부터 선물도 하사받았습니다. 스물아홉 살에 돌연 귀국해 뜻을 펼치려 헸으나 신라는 이미 기울고 있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그는 가야산에 들어 생을 마쳤으니 시대를 잘못 타고난..

고전시가 2022.05.15

유성호_『오뇌의 무도』와 번역의 근대(발췌)/ 동심초 : 설도(김억 옮김)

동심초 설도薛濤/ 김억 옮김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난 날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풍화일장로 가기유묘묘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불결동심인 공결동심초 ▶『오뇌의 무도』와 번역의 근대/ 번역의 근대를 되돌아보며(발췌)_유성호/ 문학평론가 김억이 선도적으로 구상하고 실천한 '번역의 근대'를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그의 한시 번역 작품 하나가 김성태라는 작곡가에 의해 불후의 가곡으로 남은 것 하나를 순간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원작의 충실한 번역이라기보다는 '소위 김안서 식'의 창의적 번역이 이룬 눈부신 번역시이다. (···) 이는 당나라 여성 시인 설도薛濤의 작품을 번역한 것이다. 『동심초』(1943)에 표제작으로 실렸고 해방 ..

고전시가 2022.05.06

김민정_격변기의 시조와...(발췌)/ 이방원 정몽주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缺) 유성원 유응부 왕방연 이색 길재

격변기의 시조와 국난 극복 의지_발췌 김민정(시조시인,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우리 시조는時節歌調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시절가조란 그때 그때의 시류에 맞는 시가라는 뜻이었고, 현대에 오면서 노래보다는 문학이라는 뜻으로 이어졌다. 순간을 노래하는 시조이기에 역사적인 순간의 격변기 속에서 우리는 시조로서 그 감정을 읊었고, 또한 그러한 격변기의 국난 극복 의지를 시조작품에 피력했다. 시조의 완성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 고려 말,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들은 고려라는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고려 충신들과 조선을 건국하고자 했던 이성계 사이의 격변기에서 탄생된 작품들이 많다. 포은 정몽주는 이성계의 계략을 눈치채면서도 그의 병문안을 가게 되고 이방원은 그에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지/ 만수산 드..

고전시가 2022.03.31

정중월(井中月)/ 이규보

정중월井中月 이규보(李奎報; 1168-1241, 73세)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의 한 스님이 달빛을 탐내, 井汲一甁中(정급일병중) 물병에 가득 물과 함께 담았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가서 응당 깨달으리라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 기울여 쏟으면 달이 없음을 -전문- ▣ 사찰에 머물던 스님이 외출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갈증을 느껴 우물을 찾았다. 우선 물부터 마시려는데 우물 속에는 말끔하게 씻은 달이 벙긋 웃고 있었다. 갈증도 갈증이지만 그 달빛에 취한 스님은 바랑의 물병을 꺼내 조용히 물을 퍼 담았다. 물보다는 달이 더 욕심났기 때문이다. 절에 돌아와 물을 쏟으면 사라지고 없을 것인데 헛된 물욕에 마음을 뺏긴 깨달음의 과정을 주제로 한 시다. 전 1,2구에서 달빛을 탐한 산승이 아직도 색色의 현..

고전시가 2021.05.17

임종욱_자연친화와 생명존중(발췌)/ 슬견설(蝨犬說) : 이규보

슬견설蝨犬說 이규보(1168-1241, 73세) 어떤 손님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어제 저녁에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개를 때려죽이는 광경을 보았는데, 그 모양이 너무나 비참하여 아픈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하거니와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네." 이에 내가 대답했다 "어제 어떤 사람이 이글이글한 불 화로를 끼고서 이를 잡아 태워죽이는 것을 보고 아픈 마음을 참으로 견딜 수가 없었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다시는 이를 잡지 않으려고 하네. 손님은 아주 실망한 낯빛을 짓더니 말하였다. "이는 미물이 아닌가? 내가 큰 것이 죽은 것을 보고 비참한 생각이 들기에 말한 것인데, 그대가 이와 같이 대응하니 나를 놀리는 것인가?" 나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무..

고전시가 2021.03.23

정재민_한 해의 끝과 시작을...(발췌)/ 수세(守歲) : 허균

수세守歲 허균(1569-1618, 49세) 舊歲隨更盡(구세수경진) 묵은해는 자정과 함께 다하고 新年趁曉來(신년진효래) 새해는 새벽을 좇아 오는구나 光陰眞可惜(광음진가석) 세월이란 참으로 아까워서 客子轉堪哀(객자전감애) 나그네 신세 더욱 슬프다 寶瑟頻移柱(보슬빈이주) 거문고는 자주 기러기발 옮기고 香醪正滃杯(향료정옹배) 향 좋은 술은 잔에 넘실대누나 明朝已三十(명조이삼십) 밝은 아침이면 나이 벌써 서른 衰病兩相催(쇠병랑상최) 쇠약과 질병 둘이 서로서로 재촉하네 -전문-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읊은 시가들(발췌)_정재민/ 육군사관학교 교수 허균(許筠 1569-1618, 49세)의 「수세守歲」라는 제목의 시다. 시적 화자는 지금 이십 대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 삼경을 지나 막 서른 살이 되었다. 보배로운..

고전시가 2021.03.20

기칠송(奇七松)/ 설죽

기칠송奇七松 설죽 重屛寂寂掩羅暐 (중병적적엄라위) 적막 속에 비단 장막 드리웠는데 但惜餘香在舊衣 (단석여향재구의) 네 남긴 옷에 향기만 남았구나 自分平生歌舞樂 (자분평생가무락) 평생토록 노래하며 춤추리라고 생각했지 不知今日別離悲 (부지금일별리비) 오늘처럼 이별 아픔 있을 줄이야 ▣ 설죽의 막내 남동생 칠송에게 보낸 시 기칠송奇七松에서는 고향과 혈족을 떠나 객지에서 자유롭게 살 것이라 믿었지만 고독한 비첩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석천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설죽의 시에는 감정을 절제하고 홀로 아픔을 감내하며 인고하는 한국여성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의 주옥 같은 한시 166수는 조선 여류 시문학을 풍성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늦었지만 ..

고전시가 202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