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기의 시조와 국난 극복 의지_발췌
김민정(시조시인,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우리 시조는時節歌調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시절가조란 그때 그때의 시류에 맞는 시가라는 뜻이었고, 현대에 오면서 노래보다는 문학이라는 뜻으로 이어졌다. 순간을 노래하는 시조이기에 역사적인 순간의 격변기 속에서 우리는 시조로서 그 감정을 읊었고, 또한 그러한 격변기의 국난 극복 의지를 시조작품에 피력했다.
시조의 완성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 고려 말,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들은 고려라는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고려 충신들과 조선을 건국하고자 했던 이성계 사이의 격변기에서 탄생된 작품들이 많다. 포은 정몽주는 이성계의 계략을 눈치채면서도 그의 병문안을 가게 되고 이방원은 그에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지/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라는 「하여가」를 지어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았고, 정몽주는 이에 다음과 같은 화답시조로 답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포은 정몽주, 「단심가」 전문
포은圃隱 정몽주(1337-1392, 55세)는 고려 말의 성리학자이며 충신이다. 조선을 건국하려는 이성계의 야망을 알고 있었기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화답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격변기에도 고려의 신하로서 자신의 주장과 신념은 변함이 없음을 알림으로써 몸은 죽어도 자신의 신념은 죽지 않겠다는 결의로써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귀갓길에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철퇴를 맞고 죽게 되지만 그의 뜻은 아직도 살아 우리에게 전달되고있다. (p. 29-30)
(중략)
다음으로 조선의 6대 왕이었던 어린 단종(1441-1457, 16세)의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세조, 1417-1468, 51세)에 반항하며 단종 복위를 꿈꾸었던 사육신(성삼문, 박팽연,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들의 시조를 살펴보자.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때 독야청청 하리라
-성삼문(1418-1456, 38세), 「이 몸이 죽어가서」전문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 명월夜光 명월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변變할 줄이 이시랴
-박팽년(1417-1456, 39세), 「가마귀 눈비 맞아」 전문
방 안에 켰는 촛불 뉘와 이별 하였관대
겉으로 눈물지고 속 타는 줄 모르는고
저 촛불 나와 같아서 속 타는 줄 모르도다
-이개(1417-1456, 39세), 「촉루가」전문
(하위지 缺)
초당에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워
태평성대를 꿈에나 보려터니
문전의 수성어적이 잠든 나를 깨와다
-유성원(미상~1456), 「초당에 일이 없어」전문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 가노매라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유응부(미상~1456), 「간밤에 불던 바람」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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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미상), 「천만리 머나먼 길에」전문
위의 다섯 작품은 사육신이 쓴 작품이며 마지막 작품은 단종을 영월에 유배시키고 돌아오며 왕방연이 쓴 작품이다. 사육신이란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은 집현전 학사로 세종의 신임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단종 복위를 주장하다가 실패하여 처형을 당한 사람들이다. 사육신은 모두 학식이 깊고 청빈했다. 이들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모두 절개를 지켰고, 세조와 추국관인 신숙주를 꾸짖었다. 이개는 고려 말 대학자였던 이색의 증손자였으며, 성삼문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한 인물이다. 꼿꼿한 절개로써 정치적 격변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p. 32-34)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 이색, 「백설이 잦아진 골에」전문
이 작품은 고려 유신인 이색(1328-1396, 68세)의 작품이다.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색은 자신이 충성을 다했던 고려 왕조가 무너지고 신진 세력인 이성계 일파를 중심으로 한 조선 왕조가 들어서자 이에 대한 회한과 안타까움을 우의적, 풍자적으로 드러냈다. 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여말 3隱 중의 한 사람이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여러 차례 출사를 종용했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p. 31-32)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길재, 「회고가」전문
야은 길재(1353-1419, 66세)는 이색의 제자로서 태종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으나, 고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선비이다. 이 시조는 고려의 옛 도읍지인 개성을 돌아보면서 망국의 한과 아타까움을 노래하고 있어 「회고가」라고 한다. 초장에선 고려의 옛 서울에 신분이 낮고 보잘 것 없는 신분으로 돌아온 화자의 모습을 그렸고, 중장에서는 유구한 자연과 무상한 인간의 삶을 대비하고 있으며, 종장에는 고려 왕조의 번성했던 시절이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다.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는 것으로, 절개 있는 선비의 모습으로 격변기를 건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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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인』 2021-가을(56)호 <특별기획 |제60회 한국문학심포지엄 주제 발표 지상중계> 에서
* 김민정/ 시조시인,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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