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월井中月
이규보(李奎報; 1168-1241, 73세)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의 한 스님이 달빛을 탐내,
井汲一甁中(정급일병중)
물병에 가득 물과 함께 담았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가서 응당 깨달으리라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 기울여 쏟으면 달이 없음을
-전문-
▣ 사찰에 머물던 스님이 외출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갈증을 느껴 우물을 찾았다. 우선 물부터 마시려는데 우물 속에는 말끔하게 씻은 달이 벙긋 웃고 있었다. 갈증도 갈증이지만 그 달빛에 취한 스님은 바랑의 물병을 꺼내 조용히 물을 퍼 담았다. 물보다는 달이 더 욕심났기 때문이다. 절에 돌아와 물을 쏟으면 사라지고 없을 것인데 헛된 물욕에 마음을 뺏긴 깨달음의 과정을 주제로 한 시다.
전 1,2구에서 달빛을 탐한 산승이 아직도 색色의 현상을 쫓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하고 후 3,4구에서 모든 것이 헛된 공空임을 깨닫는 득도의 과정을 희화한 절창이다. 무정설법의 충실한 가르침이 이 시의 가치를 드높인다.
이규보는 8천여 수의 시와 많은 문장을 남긴 고려의 대문호다. 그래서 시답지 않은 시를 쓴다며 비난하는 이도 많았다. 『동국이상국집』과 같은 저작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준 그가 과연 자기도취에 빠진 비문의 시인인가. 이는 문인이 최씨 무인정권에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한 데 대한 시기일 뿐이다. 형식을 무시하고 일상을 소재로 한 가벼운 시도 있으나 그의 시와 문장은 역사의 귀한 사료로서 가치를 발한다. 그의 달빛은 아직도 유효하다. (펀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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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문학』 2021-봄(27)호 <가온을 여는 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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