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1 3

차를 끓이며/ 윤석산(尹錫山)

차를 끓이며     - 손석일 兄에게     윤석산尹錫山    채광창 가까이 겨울은  다가와  머무른다.   손석일 형이 보내 준  작설차, 눈 녹은 모악산 기슭에서  참새 혀만큼 내민 잎들을 따다  여름내 그늘에서 말린  작설차,  스스로 체온을 덥히며  방 안 가득히 번지는 온기가 된다.   언 손, 부르튼 손.  그러나 부르튼 시가 되지 못하는  전라도 김제군 모악산 기슭.   채광창 가까이 부러진 햇살  철이 든 아이마냥  겨울은 절룩이며 저만치 걸어가고 있다.    -전문(p. 208)   * 윤석산 선생님께// 전북 김제군 백구면이 저의 출생지입니다. 돌계단 몇 개를 밟고 올라가 대문을 열면, 무덤 몇 기基와 그 무덤들을 에둘러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는데요. 늘상 거기 올라서서 (저 멀리) 모악..

책/ 윤석산(尹錫山)

책     윤석산尹錫山    나이가 들고 보니 젤로 무거운 게 책이다.  한 두어 권만 가방 안에 있어도  어깨가 한쪽으로 기운다.   이 무거운 책들 무거운 줄도 모르고  평생을 들고 다녔으니  어지간히 미련한 사람이다.  그만 외출이라도 할 양이면 손에  으레 책 한두 권 들고 나가야 했던 젊은 시절.   지금이라도 무거운 줄 알았으니 다행이다.  무거운 것은 다먄 무게만이 아니다.  책 안에 담긴 말씀들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 줄  이제야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   그러나 다만 담겨진 말씀만이 아니라  그 말씀 제대로 써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더 무거운 일임이 요즘은 더욱 절실해진다.  그래서 함부로 책 들고 다니기가  더욱 거리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책 짊어질 어깨 점점 좁아진다.     -전..

담수폭포/ 정다연

담수폭포      정다연    듣고 있어  듣고 있어   사람이 건넨 말이  깊이로 고일 때  높이로 솟을 때  피가 멎었다는 걸 알았어   멎지 않았더라면  듣지 못했을 테니까   아침에는 네가 말해준 적 있는 문장을 주석에서 찾아냈어   주석은 본문을 설명하지 않았고 본문은 있는 그대로 충분해 보였어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거야   공중전화 부스가 사라진 공터에 들고양이들이 몰려들듯이  조각조각 깨지고 나서야 병동의 창문이 구름을 담을 수 있게 되듯이  뒷목의 단추가 또렷하게 불러내는 손길도   상관없는 날이 오고야 말지   나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다른 사람의 자질구레한 일상과  정착할 수 없는 사랑 이야기로 흘러가는 하루  무심함   너를 좋은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