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비어 있는 사이
우창훈/ 건축학자
집은 기본적으로 '방'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물론 여기서의 '방'은 앞서 말한 '방이 아니라 공간'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우리가 쉽게 말하는 구체적인 '방'이다. 각각의 '방'은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있는 고유한 쓰임새가 있다. 안방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부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와 같은 각 부분의 쓰임새들이 모여서 집이라는 전체가 구성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사항 중의 하나는 집의 구석구석을 잘 계획해서 각 부분들이 그 쓰임에 맞게 어우러지고 또 쓸모없는 부분이 가급적 생기지 않도록 완벽히 기능적이고 편리한 집을 만드는 것이다. 건축계획에서는 아무리 작은 크기의 구석이라도 어떤 식으로든지 끼워 맞춰서 생활에 필요한 부분으로 정리하는 것이 설계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도심지에 지어지는 집의 경우는 이런 생각이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방의 크기와 개수가 집의 면적으로 환산되고 이는 다시 경제적인 가치 또 더 나아가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능력으로도 변환되면서 단위면적당 가격을 따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쓸데없는 구석이 살아남을 여지는 없다. 말 그대로 집은 완벽한 '방'들의 집합으로 짜임새 있게 정리된다. 모든 '방'들은 최적의 크기와 배치를 가져야 하고 사는 사람들이 편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도 일컬어져 왔던 말이 현실로 나타난 것처럼 집의 각 부분 하나하나는 전체를 위한 부품이 되어 집이 제 역할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집 평수와 관계없이 방들의 가장 완벽한 집합이다. 가장 효율적이지만 다른 입장에서 보면 '띄어쓰기'가 없는 가장 혼란스러운 조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것이 너무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부탁받은 집은 지어지는 목적 자체가 삶의 시계가 좀 느슨해진 후를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획의 시작점이 다르다. 단위면적당의 경제적 가치나 효율성은 더 이상 만들어질 집에 대한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고 이를 감당할 건축주의 마음이 있으니 '방'의 집합에 적절한 '띄어쓰기'를 집어넣은 전혀 다른 '공간' 중심의 집을 만들 수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도시의 집들이 추구하는 편리함을 잠시 내려놓고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잃어버리고 지내왔던 넉넉한 시간을 담는 공간들로 구성된 집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 다소의 불편함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새로 계획하는 집의 밑그림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최소화 될 것이다.
대부분 교외에 지어진 집들을 보면 넓은 마당과 훌륭한 전망이 있으니 아침에 일어나서 먼 산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기도 좋고, 커피를 한 잔 타서 마당에 나와서 시원한 공기를 즐기며 한가로운시간을 보내기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내부와 외부 두 부분으로 정확히 나누어 구성된 집에서는 외부의 마당을 지나서 잘 짜인 '방'들로 이루어진 내부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내부는 또 다른 도심의 집일 뿐이다. 이런 집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몰라서 놓치고 있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p. 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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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22-봄(24)호 <issue_공간>에서
* 우창훈/ 현) 수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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