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
최문자
독일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2017)라는 작품을 읽고 나면, 괴기할 정도의 광기와 강렬한 매력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18세기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 속 주인공의 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비천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추한 자신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에 빠지며,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존재들의 미덕을 열망하게 된다.
결국 그는 가장 사랑스럽고 순수하고 고결한 소녀를 25명이나 살인하여 그들의 머리카락에서 얻어낸 체액으로 향수를 제조한다. 그 악마적인 발상에도 불구하고이 작품에서 매력을 느끼고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 얻고자 하는 최상의 선과 미는 인간을 통해 얻어진다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왜소하고 추한 외모 때문에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무두 작업장에서 일하며 경멸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길을 떠나 새로운 일에 몰두하게 되는데, 천부적으로 뛰어난 후각이 향수 제조업에 더할 나위 없는 재능과 힘이 되어준다. 비참한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존재들, 천진난만하고 발랄하며 아름답고 상냥한, 그래서 사람들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는 소녀들이 그가 열망을 품는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기형적으로 몸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악취조차도) 자신을 견딜 수 없어 한다. 향기를 발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서 그가 만든 엄청난 향수를 뿌렸을 때,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게 환호와 사랑과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그 순간 그것이 자신의 본질적인 냄새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이 만든 향수를 병째 자기 몸에 쏟아버린다. 사람들은 그를 너무도 열망한 나머지 달려들어 먹어버리고 만다. 그르누이가 스스로 파멸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과 실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최인훈 선생의 「가면고」 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인 왕이 거리를 지나가다 아름답고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보면 그 얼굴 가죽을 벗겨내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무수한 얼굴을 자신의 얼굴 위에 씌워 봤지만 다 녹아내려버리고, 결국 자신의 얼굴에서 그 수많았던 얼굴을 발견한다는 이야기다.
사랑과 평화와 아름다움은 위장할수록 숨막힌다. 경건을 위장한 경건도 언젠가는 악취를 내게 된다. 우울한 시대에도, 비록 고통스러운 선택일지라도 본질적인 자기 냄새로 일관하며 진실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용기를 주는 것 같다. ▩ (p. 13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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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자 첫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에서/ 2022. 3. 14. <난다> 펴냄
* 최문자/ 1943년 서울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과 사이사이 새』『파의 목소리』『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등, 시선집『닿고 싶은 곳』,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및 동 대학 총장 & 배재대 석좌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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