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왜 퇴계의 삶을 들여다보는가/ 김석

검지 정숙자 2022. 4. 13. 14:44

 

    왜 퇴계의 삶을 들여다보는가

 

    김석/ 시인

 

 

  서당 훈장의 맏따님이셨던 어머니는 네댓 살로 기억되는데 당신이 무릎에 나를 뉘시고 호롱불 아래서 천자문天字文을 자장가처럼 불러주셨다. 중학생 이후 나는 유일신 기독교 신자로 살아왔다. 그러던 중 불혹 가까운 나이 가을이었다. DNA라 할까, 퇴계철학退溪哲學『주역周易』을 붙잡게 되었는데 이것은 혈영맥血靈脈으로 천자문 자장가로 나를 재워주셨던 어머니의 음덕이라 생각한다.

  퇴계 이황李滉(1501-1570, 69세)은 7개월 핏덩이일 때 진사進士이셨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당시 양반 자제들의 학교격인 향교鄕校나 서당도 다니지 못하였고, 6세에 마을 노인에게 천자문을 배웠고, 12세에 부사父師였던 숙부를 통해 『논어論語』를 잠시 공부했을 뿐 거의 자학자습이었다. 사람들이 존경하는 퇴계 선생의 지행호진知行互進의 삶을 이해하는 길은 『심경心經』과 『논어』의 「학이편學而篇」 학문수업으로 3호 1장과 자식됨과 제자다움의 지도리인 7장, 군자의 됨과 다움으로 요왈堯曰의 3야를 파지해 읽어야 퇴계의 학행일치學行一致와 지행호진의 앎과 삶을 이해할 수 있다. 퇴계를 공부하는 필자는 이번 대통령 유력 후보자들의 수신제가身齊家 모습이 묵정밭처럼 뒤집힘을 보면서 됨과 다움으로 사람공부가 얼마나 절실한가에 대해 시인과 선생으로서의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퇴계가 편집한 편지글인 『자성록自省錄』을 소개하려 한다. 『자성록』은 서구의 참회록이나 고백록과는 달리 천인상응天人相應으로 자기성찰의 완성을 위해 편집한 글들이다. 퇴계가 문인, 제자, 붕우朋友, 집안의 자녀 등 백여 명의 사람들과 천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자성록』은 퇴계의 50세 이후 학자며 교육자로 있을 때 주고받은 편지들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벼슬길을 79회나 사양하고 퇴계가 한결같이 실천하려 했던 학문의 자세는 나의 내면을 먼저 다잡고 내 행위를 바르게 하는 敬以直內 義以方外, 즉 나의 내면과 외면의 행위가 일관되는 궁리성찰窮理省察과 거경존양居敬存養을 닦아가는 지경持敬의 자세였다. 이런 퇴계의 서간으로 이루어진 『자성록』은 국내외 많은 학자들에 의해 퇴계철학의 백미요 지도리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퇴계의 나이 58세 5월 『자성록』 엮으면서 한 말이다.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였다. 하물며 말을 한 뒤에 저편은 잊지 않았는데 내가 잊은 것이 있는가 하면 저편과 내가 함께 다 잊어버린 것도 있으니 부끄러움을 넘어 두렵기도 했다. 궤짝을 뒤져 보존되어 있는 편지들을 다시 베껴서 책상 위에 두고 수시로 펼쳐 보면서 반성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선생이 살던 때도 당쟁으로 학행일치의 사람됨에는 눈을 감고 있던 때였다. 대륙문화의 수용국 일본은 임란 이후 한일합방까지 퇴계가 편찬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자성록』을 선생에 대한 우러름[]으로 극구 칭찬, 일본에 퇴계학파가 조성되었고 그들 특유의 양기화혼洋器和魂 정신을 발휘하여 퇴계의 경철학敬哲學을 그들의 것처럼 혈육화血肉化하였다.

  시대는 옛과 오늘이 있지만 도리에는 동서와 고금의 구별이 없다時有古今 道無古今 理無東西는, 그래서 퇴계의 앎과 삶을 두 수레바퀴처럼, 새의 두 날개처럼 여기면서 모든 사상은 그 시대의 산물이란 말을 붙잡고 살려 노력하고 있다. 분단의 내 나라는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지위지향地位志向의 처세와 이데올로기의 첨예화, 사람의 인격마저 ITinformation technology로 보는 물질과 과학만능시대이다. 그러나 퇴계의 지행호진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의 됨과 다움으로 휴머니즘 철학을 나의 구방심求放心과 천칭天秤으로 하면서 오늘도 나를 다독이고 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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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2-4월(246)호/ <고전에게 길을 묻다> 에서

  * 김석/ 1942년 부산 출생, 1978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환상예배』『우슬초로 씻으소서』『도산서원 가는 길』『광화문』등, 수상집 『다섯 수녀와의 山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