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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형_인간의 바깥에서 재난을 말하는 방법(발췌)/ 두개골의 안과 밖 : 서이제(소설가)

검지 정숙자 2022. 1. 16. 01:52

 

    두개골의 안과 밖

 

    서이제/ 소설가

 

 

  병든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아픈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자주 아픈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시름시름 앓는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체력이 좋지 않은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알을 잘 낳지 못하는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알을 낳지 못하는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살이 잘 찌지 않는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체구가 작은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근육이 너무 많은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날고 싶은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호기심이 많은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고집이 센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질투가 많은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선한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산만한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똑똑한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그리 똑똑하지 못한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화를 잘 내는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잘 웃는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잘 우는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소심한 닭. (쓸모없음/폐기처분)

    -『자음과 모음』 2021-여름호, 166쪽/ 인용, 『서정시학』 2021-겨울호, 7-8쪽

 

  인간의 바깥에서 재난을 말하는 방법들(발췌) _ 김건형/ 평론가

  인류가 자초한 환경 위기, 기후 재난의 시대다. 환경 오염이 인간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이라는 레토릭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류가 크게 변하진 않은 것 같다. 그럴 때 지금의 소설은 이 재난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다만 익숙한 경고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의 경고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환경에 대해서 말할 때 전제하거나 누락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 맺어온 방식을 성찰하는 소설들이 등장하고 있다.

  신이 인간에게 지상의 경작권을 분배하고 각종 동물에 대한 주권을 주었다는 창조 신화나, 세계의 파국 속에서 선택받은 선한 인간이 모든 동식물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배에 태웠다는 재난 신화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종으로서 서로 만나왔다. 그러나 오래 지켜온 종적 특권에 입각한 인식에서 벗어나, 다른 언어/인식의 체계를 상상하고, 환경 문제가 인간 자신의 다른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고자 하는 소설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인간 존재를 종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식하고 관계 맺는 일은, 인간이 스스로를 대하는 관점도 바꾸게 하는 일이다. 인간 집단 사이에 우열을 나누고 다른 집단을 도태시켜 인류라는 구조를 존속하던 '섭리'에서 벗어나게 한다. (p. 4)

 

  (···)

 

  소설은 닭이 필요에 따라 차곡차곡 쌓이고 폐기되는 양상을 양계장이나 매몰 구덩이처럼 문자를 쌓아 시각화한다. 그 안에 인간에게 쓸모가 있는지에 따라 닭을 분류하고 인식하는 언어 체계를 기입했다. 그런데 닭을 폐기처분하는 분류는 점차 개체적 특성을 담은 언어로 변해간다. 인간의 언어 체계가 닭을 종으로서의 몇 가지 특성으로서만 국한해서 인식하고 분류하지만, 기실 그것으로 포괄할 수 없는 각각의 고유한 삶과 특성이 있음을, 그것이 인간의 고유한 삶과 성격을 분류하는 언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점층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안전한 거리와 화자의 인식론적 우위를 전제로, 열등해서 무해한 대상의 불행을 연민하고 관찰자의 감정을 이입하는 전통적인 감성 형식과는 다르다. 한 닭을 택해 인간적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전체의 인식론적/존재론적 체계는 유지하면서 특별한 사연을 입증하여 문학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방식에 저항하는 것이다. 대신 이 소설은 닭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종적 인식 체계 자체와 인간 자신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개체적 인식 체계 자체를 드러내고 충돌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소설가 화자는 "그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인간은 좀처럼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처럼 기성의 방법으로 한 닭을 택해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의인화로 "썼다가, 모조리 지워버린다"며 앞에서 쓴 문장에 직접 취소선을 그어 버린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문학. 망각의 문학. 의인화"를 불신한다. "닭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붙잡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재현되는 내용뿐만 아니라 재현하는 언어/형식 역시 인간과 동물이 관계를 맺는 인식론적 틀 자체를 드러내거나 혹은 이를 조건 짓는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닭에게 인간의 목소리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닭의 목소리가 부여될 수 있기"(이상 모두 173쪽)를 기대하며, 소설의 전형적인 서사의 구조, 선택된 화자/인물의 특권적 위치, 문학 언어/문자 언어의 권위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종異種 문자의 병치, 단어의 반복과 변주, 산문과 시의 병렬, 타이포그래피의 이미지화로 서사로의 매끄러운 몰입을 방해한다. 짧은 문장은 산발적으로 흩어지고, 단어는 유기적인 의미망을 형성하며 이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반복된다.

  구성 측면에서도 잘 구성된 '한 시간의 흐름 아니라 '인식 틀'을 재현하는 서사다. 각각의 장은 모두 다른 시점을 택하고 있다. 예방적 살처분 현장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포상금을 위해 새를 사냥하는 사냥꾼의 시점으로 쓴 단락, 그 총구에 잡힌 까치가 매일 살아내기 위해 겪는 투쟁을 담은 시점으로 쓴 단락을 연속하는 식이다. 죽어가는 닭, 살처분 노동자, 수의사의 내면과 살처분을 보도하는 언론 기사, 바이러스 감염인에 대한 유언비어와 네티즌의 댓글 등 시점을 구분 없이 혼용함으로써, 소설은 전염병으로 인한 동물 학살을 여러 위치에서 관찰한다. 동물을 종 차원의 구조적 관리의 대상으로 볼 때, 그 학살을 실제로 집행하고 수행하는 사람들 역시 비인간적 지위로 전락하고, 각각 고유한 고통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보이지 않게 된다. 동물을 종으로 인식하는 한, 인간 자신 역시 종으로서 대상화되는 언어/담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p. 인용문 7-8/ 론 4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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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 2021-겨울(92)호 <기획특집/ 생태 인문학과 한국문학>에서 

 * 김건형/ 2018년『문학동네』로 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