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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_전후의 혼란, 불교로 위로하다(발췌)/ 생부처 : 박병순

검지 정숙자 2021. 10. 6. 03:02

 

    생부처

 

    박병순(1917-2008, 91세)

 

 

  오직 지아비를 위하여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다.

 

  아들을 못 낳는다는

  죄 아닌 죄로 하여,

 

  산처럼 외로운 고독을

  참아 가는 생부처!

 

  단 하나 핏줄인

  딸자식을 데불고,

 

  빠끔히 트이는

  희망을 의지하여,

 

  어디든 살아 보겠다는

  갸륵하다 생부처!

 

  그대 생부처로

  야생을 곱게 나서,

 

  저승에 다시 만나

  겁을 두고 누리다가,

 

  인간에 되 태어나는 날

  엉킴 없이 펴세나

     -전문(p. 256-257.)/ 『구름재 시조전집』 가꿈, 1993.

 

  전후의 혼란, 불교로 위로하다_1950년대 전후 시조(발췌)_권성훈(시인, 경기대 교수)

  박병순의 「생부처」는 살아있는 부처, 즉 생불生佛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시에서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아내를 표상한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유교 이념이 팽배한 나머지 출가한 여자는 오로지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해야 했다. 게다가 남아선호男兒選好 사상으로 여자가 슬하에 아들이 없으면 대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혹한 시집살이를 감내애야 했다. 이것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부다처제가 암묵적으로 허용됐다. 말하자면 '딸자식'만 있는 화자의 아내는 "오직 지아비를 위하여/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지만 "아들을 못 낳는다는/ 죄 아닌 죄로" 평생 죄인처럼 혹사당하며 살았다. 이러한 아내를 화자는 2수 종장과 3수 종장에 와서 "생부처"라고 칭한다. "산처럼 외로운 고독을/ 참아 가는 생부처!"와 "어디든 살아 보겠다는/ 갸륵하다 생부처!"가 그것이다.

  원해 생부처는 불가에서 살아 있는 부처처럼 지혜롭고 자비로우며 인격과 덕행이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의미한다. 시인은 아내의 공덕을 세속의 법과 도덕에 구애되지 않는 완전무결한 인격체와 같이 생불에 비유하고 있다. 마지막 수에서는 이생이 아닌 저승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데 "인간에 되 태어나는 날"이라는 구절에서 윤회의식이 엿보이기도 한다. (p. 25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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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평론』 2021-여름(86)호 <특별기획/ 현대시조와 불교 ②> 에서

  * 권성훈/ 문학평론가, 2013년 『작가세계』 평론 신인상 당선, 시집『밤은 밤을 열면서』외 2권, 저서『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현대시 미학 산책』 『현대시조의 도그마 너머』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