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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주(필명, 전해수)_1960년대 동인지『산문시대』와 최하림(발췌)

검지 정숙자 2021. 12. 31. 01:25

 

    1960년대 동인지 『산문시대』와 최하림(발췌)

 

    전영주(필명: 전해수)

 

 

  『산문시대』는 1962년 목포에 근거지를 둔 김현, 김승옥, 최하림이 의기투합하여 발행한 동인지였다. 1964년 10월까지 3년간 총 5호로 종간되었으며, 『산문시대』의 표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학의 산문정신을 표방하며 1960년대 4 ·19세대의 새로운 문학장을 열게 된다. 1호 발간 이후 김치수, 염무웅, 곽광수, 강호무, 김산초, 김성일, 서정인 등 총 10인이 동인으로 합류했으며, 4 ·19 이전의 문단이 기득권 등단작가 중심의 안정적인 문단질서를 토대로 형성되었다면, 이들은 패기로 가득 찬 지방 출신 서울대학교 재학생 신인 중심으로 창간된 것이 특징적이다. 요컨대 『산문시대』는 목포 중심의 지방 출신 대학생 등단자들이 모여 문학의 자유정신과 새로운 감각을 모토로 문학의 산문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김현, 김치수, 염무웅, 곽광수와 김승옥, 서정인, 최하림 등 1970~1980년대 한국 문학의 주요 비평가 및 작가군을 배출한 의미 있는 동인지였다 할 수 있다.

  『산문시대』 동인들은 영문, 불문, 독문을 전공하여 외국 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토대로 해외문학의 번역을 중요시했는데, 외국 문학 번역과 함께 비평문학을 실으면서 한국 문학의 저변을 확보하고 1960년대 문학장을 재편했다. 또한 『산문시대』는 후일에 『68문학』과 『문학과지성』으로 계보를 잇는 등 그 의의가 평가된다. (p. 117-118)

 

  최하림은 1962년 6월 창간호부터 『산문시대』에 참여한 초창기 멤버였으며, 3호를 제외하고는 종간까지 매호每號마다 작품을 발표하는 등 시인이었지만 동인 가운데 가장 많은 편수의 작품을 『산문시대』에 발표했다. 1960년대부터 2010년 타계하기 전까지 최하림 문학 세계에서 그의 시적詩的 성과는 충분히 증명되었지만 초창기 그가 '소설'을 쓴 사실에 대해서는 그간 관심 밖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등단시를 비롯한 초기문학에서 관찰되는 최하림 문학의 '산문성'과 '예술성'은 초창기 『산문시대』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인 것이다. 소설과 수필, 동화와 미술평론 등 다양한 방면에서 최하림 시인이 보여준 문학 세계는 최하림의 저작과 문학적 활동들이 1960년대 『산문시대』 동인 시절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하림의 (산문적) 언어 감각은 『산문시대』 동인 시절에서 비롯된 '문장'의 눈뜸과 문학적 자유정신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하림이 신춘문예에 당선될 당시에 호흡이 긴 장시長詩를 선보인 것도, 신화적 스토리가 시에 끼친 영향도, 문학적 '자유정신'의 표출로 이해된다. 최하림의 『산문시대』 활동을 논구하면서 최하림 문학의 '산문성'과 '예술성'에 대해 다시 주목해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p. 119)

 

  최하림이 1961년에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한 「회색수기」를 자신의 등단작에서 밀어내고, 1964년에 당선된 장시長詩 「빈약한 올페의 초상」을 기꺼이 등단작으로 삼으며 프로필에 안착시킨 이유를 『산문시대』 시절의 초기 문학에 대한 내밀한 의식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p. 130)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는 죽음으로 이별하게 된 아내 에우리디케(유리디체)를 되찾기 위해 그가 지닌 리라(음악)를 연주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통해 신들의 환심을 산다. 그러나 이미 이승계가 아닌 저승계에 든 에우리디케가 저승을 벗어나기 전까지 오르페우스는 절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를 어기고, 사랑의 불안감에 휩싸여 결국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를 어기고, 사랑의 불안감에 휩싸여 결국 뒤돌아보고 만다는 이야기가 이 시의 배면에 깔린 신화적 '서사'이다. 아내를 잃고 슬픔과 애처로운 눈빛으로 격정에 휘말린 '빈약한'(부족한) 올페의 뒤늦은 후회가 최하림의 '회상'(시)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니 「빈약한 올페의 초상」은 장시長詩 혹은 대서사시의 형식을 지니는 것이 납득된다. 이 시는 오르페우스의 절절한 후회와 비통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비교하자면, 릴케의 시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와는 달리 최하림의 「빈약한 올페의 초상」은 "찢겨진 시신들"이 즐비한 죽음의 통로를 거스르지 못한 '빈약한' 육체의 비통함을 자신(최하림)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듯 주시하고 있다. (p. 135)

 

  본고는 「빈약한 올페의 회상」을 『산문시대』 시절과 연동된 최하림 초기 시의 시발점으로 삼고, 초기 문학의 '산문성'과 '예술성'을 살펴보았다. 1961년과 1964년 두 차례의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시인'으로 출발한 최하림은 『산문시대』 시절을 경험하며, 시 외에도 비평, 평전, 미술평론, 수필, 동화 등 유수의 저작들을 발표할 수 있는 내면의 문학적 토대를 형성해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최하림 문학의 산문정신과 예술의 자유정신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라 판단된다. 시인 최하림이 시와 함께 관심을 기울인 '이들' 산문은 『산문시대』의 동인 활동이 그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하림은 1960년대 이후부터 2010년 타계하기 전까지도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 활동을 펼친 것인데, 그 중심에 『산문시대』 동인 시절이 그 터전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산문시대』는 최하림 문학 세계에서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최하림 문학 연구의 확장으로써 최하림의 시 세계에서 『산문시대』가 차지하는 의미 혹은 의의는 최하림의 초기 시 즉 「빈약한 올페의 초상」과 「해항」 「바다의 아이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산문성'과 '예술성'으로도 반영되고 있음을 일 수 있다. (p. 140-141)

         [ 『한국 문학연구』, 제65집(동국대학교 한국 문학연구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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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하림연구회 엮음 『최하림 다시 읽기』 2021. 9. 6. <문학과지성사>펴냄

  * 전영주(필명,전해수)/ 문학평론가, 상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지은 책 『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목어와 낙타』『비평의 시그널』『메타모포시스 시학』『푸자의 언어』 등 (p. 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