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view 김광규 오연경> 中
낮은 목소리로 멀리 가다(발췌)
- 김광규 : 오연경
시인은 독일 문학을 전공하면서 우리말로 시를 쓰는 한편, 하이네, 브레히트 등 지금은 널리 알려진 독일 작가의 시를 일찌감치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에도 부지런했다. 독일 시가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릴 때 김광규 시인의 번역이 정본으로 채택되는 일이 많았다. 오랫동안 독일 시를 읽고 번역해 온 시인에게 그 영향 관계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일 텐데, 두 언어 사이를 오가는 번역은 창작자로서의 시인에게 어떤 사유의 빛을 던져 주었을까?
"독일어가 우리 귀에는 딱딱하게 들리지만 굉장히 논리적이고 소리의 아름다움에도 깊이가 있다. 시라는 것이 언어의 음향과 의미가 합쳐진 것이라서, 서사적 기능이 중요한 소설과 달리 시에서는 음향과 의미의 조화가 중요하다. 독일 시를 읽으면서 독일 시의 율격에 우리말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나로서는 독일 시를 우리말로 옮길 때 뜻만 옮긴 것이 아니라 소리의 규칙과 음향도 옮기려고 애썼다. 그래서인지 독자들이 내가 옮긴 독일 시를 읽으면 내 시를 읽는 것 같다고도 한다."
시인은 한양대에 재직하고 있던 1985년에 브레히트 시선집을 번역하여 국내에 브레히트의 시를 본격적으로 알렸다. 표제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지금까지도 김광규 시인의 번역본이 가장 널리 읽히고 있다. 특히 원제를 약간 변용한 우리말 제목이 자주 인용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원제에 없던 '슬픔'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일까?
"당시 브레히트는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금기시되었다. 브레히트 시선집 번역을 부탁받고 그나마 온건한 작품들을 골라서 번역했지만 결국 판금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음지에서 많이 읽혔다고 한다. 당시 광주 항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서 모든 지식인이 살아남은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제목을 축자적으로 번역하면 '나, 아직 살아 있는 자(Ich, der Uberlebende)'인데 당시 분위기를 생각해서 제목을 조금 바꾼 것이 반향이 컸다. 당시 황지우 시인이 "이건 김광규의 시지, 어디 브레히트의 시요?"라고 우스갯말을 하기도 했다. 브레히트 시선집은 율격까지 옮기려고 노력한 것이 독자에게 음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어 널리 애송되었던 것 같다. 이럴 때 힘들여 번역한 보람을 느끼는데, 사실 그때부터 허리가 아프기도 해서 '이제 내 시를 한 편이라도 더 쓰는 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하면서 번역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김광규 시인의 독일 시 번역은 국내 초역이 많다. 그만큼 시인은 독일 시를 국내에 알리는 데 열정적이었고,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앞장서 걸어가는 데 도전적이었다. 시인은 독일의 뛰어난 현대시를 우리말로 읽고 공감할 수 있게 번역하여 독자들의 문학적 자산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 번역의 노동은 율격과 의미에 대한 시인의 고뇌로 녹아 들어가 그의 창작에 무언가를 더해 주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독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 읽힌 김광규 시인의 시가 이곳의 상황과 이곳의 언어 감각으로 쓰였지만 각국에서 널리 공감을 얻었던 것은 초심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경주해 온 '쉽게 읽히면서 쉽지 않은 시'라는 시인의 목표가 문학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길과 통했기 때문이리라. (p.19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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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2021-가을(22)호 <inteview 김광규 오연경> 에서
* 오연경/ 1974년 서울 출생, 2009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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