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박소란_'나'로의 깊고 고요한 여정(발췌)/ 겨울 섬 : 홍신선

검지 정숙자 2021. 12. 21. 01:56

<inteview     홍신선 박소란> 中

 

   '나'로의 깊고 고요한 여정(발췌)

 

   - 홍신선 : 박소란

 

 

  충남 당진. 일몰이 일품이라는 그곳 자그마한 텃밭에 나와 앉아 꽃이며 채소 잎사귀를 매만지고 있을 시인이 모습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파란』에서 마련한 홍신선 시인과의 인터뷰는 2017년에 있었다. 그 직후 이 글의 초고를 썼다. 글을 매만지는 지금은 2021년 7월이다. 불행히도, 지난 4년간 나는 시인을 다시 제대로 대면한 적이 없다. 과거의 인터뷰에 많은 부분을 기대어 쓰는 글임을 밝힌다.) (p. 168)

 

  "말하자면 유신 체제가 확립되고 너 나 없이 글 쓰는 사람들이 저항적인 의식이라든지 비판적인 정신이라든지 그런 것을 서슴없이 갖던 때였고, 나도 한창 때였으니까 그런 전반적인 문학 동네 분위기에 젖었지. 나름대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상당 부분 거기 쏟아붓는다 하고 썼던 작품들이 특히 『겨울 섬』에 담겨 있어요." (p. 178-179)

 

 

    겨울 섬 / 홍신선

 

 

  대교大橋를 건넜다 피난민 몇이 과거를 버린 채 살고 있다.

  마을 밖에는 

  동체뿐인 새우젓 배들

  빈 돛대 몇이 겨울 한기에 가까스로

  등 받치고 기다리고.

 

  물 빠진 갯고랑, 삭은 시간들 삭은 물에 이어져 잠겨 있다.

  일직선, 버려진 마음들로 쌓아 올린 방파제까지

  나문재나물들 줄지어 나가 있다

  뻘에 두 발 내리고 붙어 있는 목에 힘준 저들

  쓸리지 않으면

  개흙으로 삭는 일

  더러 쓸리면

  닻으로 일생 내리는 저들의 일.

 

  힘 힘 풀어 놓고

  공판장 매표소 횟집들로 선착장에 힘 풀어 놓고

  두어 걸음 비켜서서

  말채나무 오그라든 두 손에

  저보다 큰 겨울 하늘 든 채 있다

  사는 일이 사는 일로 투명하게 보이고 있다.

     -전문/ p. 179-180

 

    

  초기에 이미지와 메타포에 천착했다면, 『겨울 섬』 부터는 경험의 구체성과 현실의 실물감을 구축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 섬끝나고 세 번째 시집 얘기예요. 뜻하지 않게 경상북도 북부 안동에 가게 됐어요. 안동대학에. 그곳 낯선 환경에 적응도 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기 시작했느냐 하면, 서울에서 내가 머릿속에 갖고 있던 것들, 관념이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겠지. 현실적인 구체성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런 것들이 어쩌면 지적인 놀음이었다 하는 것. 그간의 내 시가 관녀적인 색채가 너무 강했다 하는 것. 거기서 기층 민중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아, 어쩌면 허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거기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세부를 가지고 시를 써 보자 한 것이 『우리 이웃 사람들』이에요." (p. 180)

 

  "'고졸古拙'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면서 지나친 말의 세공은 가급적 줄이자 생각해요. 말의 세공만을 정교하게 했다고 해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죠. 거기에 담겨 있는 내용, 즉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대상에 대한 인식을 얼마만큼 깊게 했는가가 중요해요. 선불교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거기에서의 관법처럼 얼마만큼 독특하고 얼마만큼 자기식으로 새롭게 해석했느냐 하는 것. 이런 식으로 자리 잡아야지 좋은 시라 할 수 있겠죠." (p. 18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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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파란』2021-가을(22)호 <inteview     홍신선 박소란> 에서

 * 박소란/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한 사람의 닫힌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