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제언(일부)
김성곤/ 서울대 명예교수 · 미국 다트머스대 객원교수 · 전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1.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한때, 사람들이 각기 다른 나라의 고유한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예컨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Cross-cultural Studies'는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앎을 통한 상호이해와 문화적 교류를 중시했다. 그래서 그때는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이 든 세대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국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모든 정보가 순식간에 전 지구로 확산되며, 무역과 다국적 기업을 통해 전 세계가 공통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이 글로벌 시대에 사람들은 이제 각 나라의 고유문화보다는 범세계적인 호소력이 있는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세계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BTS의 인기 비결은 그 보컬 그룹이 한국적이어서가 아니라, 국경을 초월하는 세계적인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BTS가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그들의 노래와 춤이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혼합인 하이브리드이자 퓨전 문화이기 때문이다. 만일 BTS가 한국의 고유한 노래와 춤으로 공연을 했다면 지금 같은 세계적 인기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이 국경을 넘어 세계의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채식주의자』와 K-Literature 논쟁은 한 좋은 방법을 예시해주고 있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을 때, 한국의 언론은 K-Literature가 드디어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그러자 『채식주의자』의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는 K-Literature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K-Literature라는 호칭은 『채식주의자』를 세계문학이 아닌, 국지적인 한국문학으로 축소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과연 『채식주의자』는 한국소설이어서가 아니라, 범세계적인 호소력이 있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수상작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것은 곧 한국 작가들이 소재는 한국적인 것으로 하되, 주제는 전 지구적 관심사로 작품을 쓰면, 한국문학은 해외 독자들이 주목하는 세계문학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작가들이 세계의 변화와 공통된 관심사에 부단히 예민한 촉수를 대고 있어야만 한다. 예컨대 『채식주의자』의 소재인 '채식'은 오늘날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고, 그 소설의 주제인 '자기만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correct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는 독선과 그것이 수반하는 폭력'은 요즘 전 지구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채식이 틀렸다고 믿고 이게 다 너를 위한 것이라며 채식주의자에게 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사람들의 독선과 폭력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서 냄새가 난다며 남편까지도 멀리하는 주인공의 태도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일 수도 있다는 점도 암시하고 있다. 바로 그런 소재와 주제가 현재 세계적인 관심사와 맞아떨어진 것이 『채식주의자』의 국제적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재는 한국적인 것으로 하되, 주제는 범세계적인 관심사로 해서 소설을 쓰면 한국문학은 어렵지 않게 세계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 08)
(서울대 명예교수 · 미국 다트머스대 객원교수 · 전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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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집 · 서울』 2021-11월(241)호/ <특별기고 - 한국문학, 새로운 지평을 열자 3>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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