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죽어가는 데에 위안을 얻기 위하여/ 정호승

검지 정숙자 2021. 11. 15. 00:56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죽어가는 데에 위안을 얻기 위하여

 

    정호승/ 시인

 

 

  2022년은 내가 한국문단에 등단한 지 50년째 되는 해다. 길을 가다가 문득 50년 동안이나 시를 쓰면서 이 험난한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참으로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을까. 어디에서 삶의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시를 쓰게 해준 절대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눈팔지 않고 시인으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어온 나 자신에게도 감사를 보냈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시인'이라는 직함 외엔 아무것도 덧붙일 게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에 대해서 늘 마음이 편하다. 내 문학적 인생만은 단순 명쾌하고 홀가분하게 느껴져서 더 좋다. 그것은 오로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시인이므로 시만 쓰면 되니까. 또 과거의 시인이 아니고 아직은 현재의 시인이니까.

  얼마 전 나는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발간했는데 그 시선집에 해설을 쓴 김승희金勝熙 시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호승은 아주 오래된 시인이자 동시에 아주 새로운 시인이다."

  나는 이 말씀 앞에 옷깃을 여몄다. 50년 동안 시를 써왔으니 나는 아주 오래된 시인이다. 그러나 아주 새로운 시인은 아니다. 김승희 시인께서 내게 하신 이 말씀은 항상 새로운 시인처럼 시를 쓰라는 우정 어린 약언藥言이다. 시인은 인간과 자연과 사물을 항상 자기만의 눈으로 새롭게 생각하고 표현해야 하므로 시인으로서의 본질에 더욱 충실하라는 고마운 말씀이다.

  요즘은 늘 스승의 말씀 또한 잊히지 않는다.

  "시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아니다. 시는 살아가는 데는 식량이 되지 못해도 죽어가는 데는 위안이 된다."

  내가 경희대 국문학과에 다닐 때 뵙게 되었던 시인 조병화趙炳華 스승의 말씀이다. 우연히 스승의 책에서 읽은 이 말씀이 지금도 내 가슴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시가 죽어가는 데에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제 나도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스승의 말씀처럼 죽어가는 데에 조금 위안을 얻기 위하여 혼자 가끔 시를 써도 되리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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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서울문학인대회 기념문집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2021. 10. 25. <문학의 집 · 서울> 펴냄

  * 이 책은 비매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