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산과 달/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1. 11. 12. 02:35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산과 달

 

    정숙자/ 시인

 

 

  멀리 바라다보이는 산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어떤 의미도 아니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물줄기 역시 논두렁 사이의 개울 외에 어떤 뜻을 안겨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그 산, 그 개울이 내 삶에 상징으로 다가오는 데는 많은 세월이 소요되었다. 대문 밖 동산에 오르면 별과 함께 떠오르던 달 역시 어두워지면 나타나는 자연의 한 현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산과 달이 아니었던들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방정환의 사랑의 선물에서 출발한 내 어린 시절의 독서는 세월과 함께 가지를 쳐 세계문학과 철학서, 경전들, 동서양의 고전과 시가 등을 섭렵涉獵케 했다. 너무 일찍 급경사로 치달았던 나의 독서욕과 그에 따른 문학에의 동경은 세상으로 난 수많은 문과 길을 엿볼 틈도 없이 머리가 희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제 때에 살지 못한 청소년기를 나는 바로-지금 향유하고 있는 게 아닐까. 괜찮다. 뒤바뀐 시계쯤이야.

  하여, 좀체 어른스러워지지 않는 데다가 아직도 소녀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호들의 이름과 현자들의 사상과 경전 속의 선악이 어린 시절에 무심히 봤던 그 산, 그 강, 그 달빛에 겹쳐 새록새록 언외지언言外之言으로 전해져 온다. 무작정 선택한 문학으로 인해 고독과 상처에 파묻힌 젊음을 통과했지만, 크게 욕되지 않았으므로 족하다. 그 산, 그 강, 저 달에 기대어 얼마나 깊이 울고 위로받으며 용기를 일깨웠던가.

  이제 돌이켜보니 참 신기하고 신비롭다. 책만 읽으며 살았어도 오늘에 이르도록 살아졌다는 사실이 기적인 것만 같다. 한마디로 묶자면, ‘나에게 있어서 책과 문학은 하나요, 문학과 나는 또다시 하나요, 문학은 외수 없는 나의 인생이었다.’ ‘···이었다라고 과거시제로 말한 까닭은 올해 내 나이가 70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13세에 시에 빠진 발이 여태 책 속에 있으니, 내일 역시! 당연히! 문학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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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서울문학인대회 기념문집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2021. 10. 25. <문학의 집 · 서울> 펴냄

  * 이 책은 비매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