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년균
요즘 코로나19 펜데믹 때문에 세상이 이상해졌다. 어디가나 사람의 얼굴은 없고, 마스크만 보인다. 참으로 별난 세상이 되었다.
문밖은 어디나 공포의 대상이다. 사람 모이는 곳엔 어디든 나설 수 없고, 누구도 함부로 만날 수 없다. 구경하고 싶은 곳이나 먹고 싶은 음식점도 마음대로 못 간다. 굳이 가려면 먼저 체온을 재고, 죄지은 사람처럼 방명록에 기록해야 한다.
소소한 일도 그러한데, 더 큰 일, 이를테면 친척의 결혼식이나 부모가 누워 계신 양로원 등에는 어떻게 가야 하나? 삶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의 질병관리청은 아침마다 방송에 나와 어제의 확진자 수를 세고 대책을 보고한다.
벌써 해를 넘겼지만, 달라진 게 없다. 얼마 전엔 치매를 앓던 친구의 부음을 듣고도 빈소에 가지 못했다. 정부의 비대면 정책 때문이다. 되레 그쪽에서 먼저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장례를 가족끼리 치른다는 소식에 마음이 짠했다. 그런 일은 어디서든 그랬고, 이제는 새로운 풍속도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아직도 내쫓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믿을만한 건 백신뿐인데, 그조차 넉넉하지 못한 모양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백신이 속속 들어오고, 정부도 이참에 집중적으로 투여하여 역병의 고삐를 당길 듯하지만, 그 역시 만만찮아 보인다. 오히려 변이바이러스까지 나타나며 불안을 부추긴다. 거기다 백신을 맞고 고생했다는 말이 나돌자,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생긴다.
그래도 맞아야 한다는 판단 아래 주민센터에 접종을 신청했다. 당연히 맞아야지. 의심하면 안 되지. 어쩌다 상처가 나더라도 참아야지. 그래서 기어이 내쫓고 마스크를 벗어야지.
접종 시간에 맞춰 장소를 찾아가니, 많은 사람이 몰려와 접종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 준비도 철저히 했다. 문밖에 대기한 안내원부터 컴퓨터 앞에서 기록하는 진행원, 의사를 보조하는 간호원, 주사기를 든 의사, 그리고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환자를 실어나를 소방서 직원까지, 모두가 제 역할을 따라 질서 있게 진행했다.
목에 순번표를 걸고 안내원을 따라다녔다. 백신을 맞는 시간은 잠시였다. 언제 바늘을 꽂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빨리 접종을 마치고, 대기소로 옮겨 한참을 기다렸다. 이상증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별다른 이상이 없자, 집으로 돌아왔다, 미리 사놓은 체온기로 체온을 재어보니 열은 오르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서 해열제를 먹었다.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지시대로 꼼짝않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어느덧 겁쟁이가 되었다.
코로나는 유사 이래 가장 큰 역병이라고 한다. 세상을 넘어뜨리려고 작정하고 나선 악마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갓 역병에 불과하다. 그로 인해 세상살이에 일시적 고통이나 지장은 줄지언정 세상이 망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세월은 흐른다. 산 넘고 물 건너며, 오늘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내일의 시간을 불러온다. 살다 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겹치듯이, 세상살이란 그만큼 우여곡절을 겪기 마련이다. 분명한 건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다윗왕의 '반지'에 새겼다는 솔로몬의 글귀가 떠오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2021. 6. 19. *창조문예 2021-8월호.
(블로그주: 이 에세이는 시집 말미에 실린 산문 5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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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자연이다』에서/ 2021. 11. 1. <지구문학>펴냄
* 김년균/ 1972년 이동주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집『갈매기』『바다와 아이들』『그리운 사람』등, 사람연작시집『사람의 마을』『숙명』『무슨 꽃을 피우는가』등, 자연시집『자연을 생각하며』등, 신앙시집『나는 예수가 좋다』, 수필집『날으는 것이 나는 두렵다』『사람에 관한 명상』등, 현)한국문인협회 고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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