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한국시인』창간사 : 주춧돌 하나/ 나태주

검지 정숙자 2021. 11. 9. 01:37

<창간사>

 

    주춧돌 하나

 

    나태주

 

 

  집이 없다고 그럽니다. 오랫동안 그랬다고 합니다. 집을 지어야 한다는 말들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기다려 보자고 또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망설이며 주저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날들이 길었다고 그럽니다.

  어찌할까요? 이대로 그냥 갈까요. 그냥 잠시 아쉬운 마음으로 스쳐 가기만 하면 될까요. 글쎄요. 이참에 누군가 무모한 사람 하나 있어 주춧돌 하나 놓으면 안 될까요! 하나의 주춧돌이 두 개의 주춧돌이 되고 다시 세 개, 네 개가 되는 날 기둥을 놓을 날이 오지 않을까요.

  세상은 세찬 강물이고 우리는 조그만 배입니다. 조그만 배들은 거센 물결에 부서지고 넘어지고 물에 그만 잠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은 배들을 밧줄로 묶으면 넘어지지 않고 강물을 무사히 건널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저는 저의 작은 배를 당신의 배에 잇대어 밧줄로 묶으려고 그럽니다.

  당신의 한 손을 빌려주십시오. 당신의 따스한 마음, 정겨운 곁을 허락해주십시오. 조그만 돌멩이 하나지만 무거울 때 있습니다. 힘에 겨워 놓아버리고 싶은 돌멩이 여전히 들고 있을 수 있겠지요.

  함께 가시지요. 함께 거센 강물을 건너시지요. 함께 목마른 모래밭, 사막을 건너시지요. 강물을 건너고 사막을 모두 건넜을 때 우리는 오늘의 시작이 좋았노라 말하지 않을까요. 인생은 내일의 후회를 줄이기 위해 오늘을 사는 것. 내일 날 그래도 오늘이 늦은 대로 빨랐노라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춧돌 하나 놓습니다. 집을 짓든 물결이 드센 강물을 건너든 모두 좋습니다. 무모한 마음으로 돌을 놓습니다. 미안합니다.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 당신도 돌멩이 하나 들고 와 주춧돌 하나 보태주시지요. 주춧돌이 모이고 기둥이 서고 벽이 만들어지고 지붕이 생기는 날, 우리의 집은 드디어 요새가 되고 왕궁이 될 것을 믿습니다. ▩

  2021년 여름

  나태주(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