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음악가의 에피소드와 시/ 배홍배

검지 정숙자 2021. 10. 9. 02:15

<권두 에세이 & 시>

 

    음악가의 에피소드와 시

 

    배홍배

 

 

  에피소드)

  피아노의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의 대결/ 예술계에는 라이벌이 늘 존재한다. 쇼팽과 리스트는 동시대에 활동한 피아노 연주가 겸 작곡가다. 폴란드에서 리스트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쇼팽은 7세 때 작곡을 하고 8세에 공연을 했을 만큼 어릴 때부터 천재란 말을 들었다.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군 징집 문제와 건강으로 고민하던 쇼팽은 아버지의 고향인 파리로 이주해 생을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음악 활동을 한다. 말끔한 귀족 스타일이었던 소팽은 병약하고 성격마저 섬세해 많은 청중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파리의 여러 살롱에서 소수의 청중들에게 인간의 내밀함을 깊은 통찰력과 피아노의 신비로운 음향으로 그러내 들려줌으로써 피아노의 시인이란 별칭을 얻고 귀족 부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세기의 사랑으로 알려진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도 이 무렵이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리스트는 11세 때 베토벤이 보는 앞에서 연주를 했다. 연주가 끝나자 베토벤은 달려 나가 어린 리스트의 이마에 키스를 퍼부었다. 베토벤은 당시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였는데 그의 이런 반응은 리스트의 손가락의 기교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말해준다. 악마적 피아노의 기교로 과시욕과 집중력이 강해 누구보다 뛰어나고 싶어 했던 리스트는 어느 날 쇼팽이 연주하는 살롱을 찾아가 쇼팽의 녹턴을 자기 스타일로 화려하게 연주를 한다. 그러자 쇼팽이 악보대로 연주하라며 직접 연주를 해보였다. 듣고 있던 리스트는, 녹턴은 쇼팽처럼 연주를 하는 것이 좋다고 인정하며 두 사람은 끝까지 우정을 나누게 된다. ▩

 

 

  시)

    빗방울 전주곡

    -쇼팽 프렐류드

 

    배홍배

 

 

  커피잔 위로 쏟아지는 쌉쌀한 빗소리,

  소리를 향해 빗방울들 날아간다

  날아가는 품새로 되 던져지는

  오각형의 음의 덩어리, 보인다

  고요함과

  차가움과

  슬픔과

  외로음, 그리고 노스탤지어 보인다

  거꾸로 흐르는 오늘의 가장자리

  자정으로 가득 찬 시간

  한 번도 통화를 해본 적이 없어

  부패한 전화기가

  나의 귓속에 검은 상처를 냈을 것이다

  사람으로 넘쳐나는 몸뚱이 끝에서

  상처보다 깊게 자라는 고양이 정신과

  물물 교환된 나의 전생,

  그곳에다 버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에서

  날카로운 빗방울은 뿌려진다, 다시 그리운 듯

    -배홍배 시인의 음악 에세이 『classic 명곡 20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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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산맥』 2021-가을(47)호 <권두 에세이 & 시>에서

   * 배홍배/ 1953년 전남 장흥 출생, 2000년『현대시』로 등단, 시집『바람의 색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