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루시다(Poetry Lucida)(발췌)
- 문학성과 대중성의 양립에 관하여
신수진
2. 도상(icon)에서 싱징(symbol)으로 움직여간 시
본고는 시와 독자의 관계가 유리된 원인을 시 자체의 본질적 요인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시가 가진 지표성의 상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체코 출신의 철학자 빌렘 플루서에 따르면 현실과 가상의 차이는 해상도의 차이다. 따라서 가상은 현실에 대한 지표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 시 역시 이미지로서 가상이다. 플라톤이 그 가상에 이데아가 없음을 이유로 시인 추방론을 내세운 것도, 아리스토텔레스가 현실의 모방에 이데아가 있음을 이유로 시적 가치를 인정한 것도, 시가 현실의 이미지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독자가 시에 빠지는 이유는 작품에 내포된 현실이 독자의 삶으로 연결되어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미지와 현실을 연결하는 지표성이다.
19세기 미국의 찰스 샌더스 퍼스는 '기호학(semiotics)'이라는 학문을 창시했다. 여기서 기호記號는 교통신호, 표지판, 모스부호, 언어 같은 의사 전달 체계뿐 아니라 의미가 통용되는 모든 사회적 의식과 문화를 포섭하는 개념이다. 퍼스는 기호학의 개념을 도상(圖像, icon), 지표(指標, index), 상징(象徵, symbol)으로 분류했다. 첫째 도상은 현실과 유사성을 전제로 한다. 전통적인 회화가 이에 속한다. 둘째, 지표는 현실과 인과 관계를 지닌 인접성을 지녔다. 화살표가 특정 방향을 지시하듯 지표는 대상을 지칭해주는 역할을 한다. 셋째, 상징은 현실과 기호의 자의성을 특징으로 한다. 예컨대 책을 그린 그림은 누가 봐도 책의 형상이지만, 언어로는 '책,, 'book', '冊' 등으로 표기된다. 그러므로 상징으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이 규약이 필요하다.
퍼스는 대상체와 기호 그리고 해석체라는 3항을 통해 의미가 생산된다고 보았다. 대상체는 외적 실재인 사물이나 개념이고, 기호는 도상 · 지표 · 상징으로 대상체를 나타내며, 해석체는 해석자의 내면에서 기호가 생성하는 것으로서 문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기호에 대해 갖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결국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미지화하는 것이 바로 이 세 가지 방법인 것이다.
시가 현실에 대한 언어 이미지라고 할 때 과거 '도상'의 시기에는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에 몰두했다. 1826년 니엡스의 <르 그라의 창가에서 본 조망>이라는 세계 최초의 사진 이후 초기 사진이 추구했던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진을 회화적 기법으로 표현함으로써 현실과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예술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기 떄문이다. 역사 초창기 서사시가 발달한 것도, 서정시에서 은유가 주를 이룬 것도 모두 현실과 유사성을 지닌 도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도 영변 약산 진달래꽃이 더없는 실감을 지니기 떄문이다. 이 시기 시는 우리의 삶이요 일상이었다. 오선지만 투영하면 시가 저절로 노래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상의 시기 대중은 새로 삶을 살았고 삶으로 시를 노래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문학이 도래하면서 시는 '상징'으로 전환된다. 근대의 정신에서 기인한 소외와 타자화를 관통한 예술은 분야를 막론하고 경계를 해체해 나갔다. 해체된 현실은 추상화되었고 상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추상은 회화에서 가장 먼저 드러났다. 칸딘스키에서 몬드리안에 이르는 직선과 도형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5)처럼 단순화된다. 상징으로서의 예술은 더이상 현실과의 유사성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검찰에 소환된 어느 권력가가 공손히 두 손을 모은 검사들 앞에서 팔짱 낀 모습으로 웃다가 찍힌 창가 사진은 부패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포토저널리즘(Photojournalism)'의 사례다. 사회적 약속이 필요한 '팔짱'과 '웃음'의 의미가 '검찰에 소환된 피의자'와 결합됨으로써 사진은 이미지의 사실적인 모습과는 유사성이 없는 부정한 권력을 상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류에 탑승했다. '상징'이 미덕이 된 시에서 '도상'의 유사성은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시어가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어는 무엇을 감추게 되었다. 의미가 미궁에 빠질수록 호평을 받았고 낯설게 표현할수록 비평가들은 호명했다. 상징은 자의성을 본질로 하므로 사회적 규약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회적 규약을 지키면 창의적이지 않다. 창의성을 본질로 하는 시에 있어 사회적 규약은 해체의 대상이 된다. 시의 경우 상징은 이 지점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창의성을 바릴 수 없었던 시는 사회적 규약을 폐기했고 자의성만 남은 상징은 대중에게 암호처럼 남았다.
시는 이제 시인과 비평가들만의 공간이 됨으로써 대중에게 부조리극이 되었다. 관객의 정서를 촉발하지 못하는 배우처럼 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시라는 갑옷을 환기시킬 뿐이다. 독자와의 소통에 실패한 시는 직관적 전달력과 정서적 호소력을 잃게 된 것이다. 시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처럼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대중은 더욱 멀어져갔다. (p.39~41)
# 블로그 주: part-1 & part-3,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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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1-여름(78)호 <특집/ 시와 대중> 에서
* 신수진/ 2019년『시와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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