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크로스오버의 비평을 위하여(발췌)/ 이찬

검지 정숙자 2021. 9. 16. 20:58

 

    크로스오버의 비평을 위하여(발췌)

    -동 · 서 사유의 융합을 위한 한 비평가의 고백

 

    이찬/ 문학평론가

 

 

  크로스오버 작업에서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는 무수한 문학 · 예술 장르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오버의 장르 파괴와 형식실험으로 국한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문학과 예술을 포함한 기성의 사회와 질서에 내재하는 숱한 허위와 억압과 모순들이며, 이를 넘어서려는 자리에서 움트는 비틀어진 형식의 의미이자 새로운 장르의 창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벤야민이 내세운 상징과 알레고리의 가치 전복적 위계 설정이나, 벤야민과 아도르노가 함께 추구했던 '철학의 한 형식으로서의 에세이'가 결국 기성 사회의 권력 구조이자 동일성의 원리가 배제하고 은폐하고 망각해버린 '비동일자의 구제'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크로스오버 비평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미메시스 같은 새로운 개념의 발명을 통해 근대 이성의 바깥으로 추방된 무수한 비동일자들, 가령 신화, 주술, 동양, 유색인, 제3세계 등등을 구제하여 이들과 우리가 함께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공성의 담론장으로 이끌어 올리는 방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비동일자의 구제'라는 방향 속에서만 우리가 앞으로 무수하게 시도하게 될 다양한 크로스오버의 실험들은 그야말로 하나의 '진리-사건'을 촉발하는 보편주의의 기념비로 남게 될 것이리라.  (p.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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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1-8월(380)호 <기획성/ 시 비평,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3>에서

  * 이찬/ 문학평론가,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저서『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20세기 후반 한국현대시론의 계보』『시/몸의 향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