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좋은 시, 새로운 시를 쓰는 법/ 이은봉

검지 정숙자 2021. 9. 12. 14:25

<권두시론>

 

    좋은 시, 새로운 시를 쓰는 법

     -인식의 전환을 위하여

 

    이은봉

 

 

  1. 항상 새로운 시, 감동을 주는 시를 쓰려고 노력하라.

  이미 남이 다 쓴 시를 써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새로운 시를 써야 독자들에게 정서적 충격을 줄 수 있고, 문학사의 재산과 유산이 될 수 있다. 이미 남이 쓴 시, 남이 쓴 시와 비슷하거나 유사한 시를 써서는 독자들에게 감동도 주지 않고, 시사적 의미도 갖지 못한다.

  새로운 시는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삶 속에서 나온다. 시대의 첨단에 설 때, 전위에 설 때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삶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새로운 시를 만든다. 나날의 일상에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언어, 새로운 형식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새로운 시를 쓸 수 있다.

 

  2. 자기에게 익숙한 소재,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대상을 써라.

  자기에게 익숙한 것,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것은 얼핏 낡아 보인다. 실제로는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것이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생생한 것이기 쉽다. 자기가 잘 아는 것은 자기가 가장 완벽하게 포착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대상이기 마련이다. 대상을 완벽하게 파악할 때 시인은 대상과 미적인 거리를 갖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시적 언어를 부여할 수 있다.

  시를 잘 쓰려면 시적 대상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잘 아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대상은 남이 잘 모르기 쉽다. 남은 잘 모르는 막연한 대상이지만 나는 잘 아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대상을 시로 써라. 그럴 때 완미한 시가 되기 쉽다.

 

  3. 남다른 경험, 특별하고, 특이한 경험을 시로 써라.

  다른 사람은 하지 못하는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경험을 시의 소재로 선택하라. 새로운 소재, 남이 쓰지 않은 소재를 선택하라. 새로운 소재가 새로운 시를 만든다. 새로운 시를 쓰려면 새로운 체험,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체험이나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노동, 새로운 독서(영화감상), 새로운 여행, 새로운 모험이 만든다. 낯선 체험은 낯선 인식과 낯선 형식을 불러일으킨다.

 

  4. 항상 새로운 발상, 신선한 발상을 하라.

  남과는 다른 시각으로, 남에게는 낯선 시각으로, 남은 보지 못한 눈으로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하라. 참신한 발상을 하려고 노력하라. 새로운 발상은 역발상, 전복적 상상력이 만든다. 뒤집어보기, 물구나무서서 보기를 실천하라. 기존의 상식과 인습을 뒤집는 발상이 필요하다. 항상 반상합도反常合道의 정신을 기억하라. 

 

  5. 과감하게 나와 남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라.

  화자 자신의 시각, 시인 자신의 시각을 고집하지 마라. 나의 시각이 아니라 타자의 시각, 남의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연이나 사물(식물 동물 광물)의 시각으로 대상을 인식하라. 그럴 때 새로운 발상이 가능해진다. 강아지의 눈으로, 고양이의 눈으로, 비듬나무의 눈, 콩의 눈으로, 미루나무의 눈으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라. 미세먼지의 눈으로 미세먼지를 노래하라.

 

  6. 새로 쓴 시가 새로운 시는 아니다.

  새로 쓴 시는 설익은 표현이 난무하기 쉽다. 새로 쓴 시는 억지 표현이 횡행하기 쉽다. 새로 쓴 시는 자칫 초고이기 쉽다. 자칫 쓰다 만 시이기 쉽다. 푹 묵혀 두고 거듭해 퇴고하라.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두어라.

  퇴고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남이 쓴 시는 흠이 잘 보이지만 자기가 쓴 시는 흠이 잘 안 보인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미적 거리를 갖고 객관적으로, 남의 시라고 생각하고 퇴고하라. 고치고 또 고쳐야 좋은 시가 된다. 내게는 익숙한 시이지만 남에게는 새로운 시라는 것을 명심하라. 새로 쓴 시가 새롭다. 좋다는 착각에 빠지지 마라. 잘 익은 시가 좋은 시이다.

 

  7. 항상 경이감을 갖고 대상을 바라보라.

  놀라는 마음으로, 감탄하는 마음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대상과 마주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대상과 마주해야 순순하고 무구한 영혼을 지닐 수 있다. 천진하고 투명한 마음이 사물과 세계를 바르게 볼 수 있다. 사물과 세계와 곧바로 바르게 마주하는 영혼이 세계의 진리를 옳게 볼 수 있다.

  순수하고 무구한 영혼, 천진하고 투명한 마음을 가지려면 하심下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낮은 마음, 자신을 낮추는 마음을 갖고 사물과 관계할 때 사물과 하나가 되는 마음, 곧 공감이 형성될 수 있다. 공감을 얻을 때 시적 영감이 찾아온다고 해도 좋다.

 

  8. 대상(풍경/장면)이 함유하고 있는 진실을 직관하라.

  대상(풍경/장면)을 바르게 보아야 대상이 함유하고 있는 진실을 순간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이때의 대상은 지금 이곳의 역사적 현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시는 순간의 형식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순간의 거울이라고도 한다. 영감도 응축된 사유, 순간적으로 압축한 사유이다. 따라서 영감도 공감의 형식이고, 일치(하나됨)의 형식이다.

  대상을 바르게 보려면 무엇보다 세 가지 시각이 필요하다. 1) 하나는 대상을 항상 다른 대상과 비교해 보라는 것이고, 2) 둘은 상대의 눈으로 대상을 , 이는 곧 타자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3) 셋은 총체적인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크로노토프, 역사와 사회의 크로노토프, 즉 역사적 현재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럴 때 대상이 지니고 있는 지금 이곳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장르의 시각으로도 대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소설(서사)의 눈으로, 수필(교훈)의 눈으로, 희곡(대화)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 장르의 특징으로 바라볼 때 시와 마주하는 눈이 밝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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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정신』 2021-여름(76)호 <권두시론> 전문

  * 이은봉/ 시인, 대전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