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쟁이
류향순/ 수필가
내가 사는 곳에는 숲쟁이 마을이 있다. 처음에는 그 이름이 붙은 거리를 지날 때마다 사람에 붙는 '쟁이'라는 접미사가 숲에 붙는다는 게 의아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숲쟁이라는 마을이 다른 지역에도 여럿 있었다. 영광 법성포에도 숲쟁이공원이 있고, 바닷가 팬션 이름에도 숲쟁이라는 곳이 있었다.
숲에 붙는 '쟁이'는 재, 즉 '성城'이라는 뜻으로 숲쟁이란 숲으로 된 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숲쟁이로를 따라가면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용궁사라는 사찰을 안고 있는 백운산이 나온다. 숲으로 된 성이 맞는 말이다. 우리말에 숲의 요정을 뜻하는 '수피아'라는 말이 있는데도 왜 숲쟁이라고 하였을까? 나는 잠시 의구심을 가졌지만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는 대수롭지 않다. 나는 수피아보다 숲쟁이가 훨씬 사랑스럽고 느낌도 좋았다.
숲쟁이로에 가면 예쁘게 차려입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오두막집과 스머프 가족의 버섯 같은 집들이 있을 것 같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여러 종류의 나무와 다양한 색채의 온갖 꽃들, 졸졸졸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옹달샘과 순한 양들과 개구쟁이 토끼들이 뒹구는 평화로운 언덕이 있을 것 같다. 나는 그곳에 들러 큰 나무에 매달린 해먹에 누워 릴케의 시집을 읽다가 쪽빛 하늘에 눈이 부셔 스르르 잠들고 싶다. 그러다가 잠이 깨면 바다로 난 찬들로 소금염전을 지나, 흰바위로에 가서 바다가 들려주는 해조음을 듣다가 저녁 바다로 잠기는 붉은 노을의 찰나를 지켜보고 싶다.
숲쟁이라는 앙증맞고 귀여운 우리말이 나를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숲쟁이로 옆은 찬들로, 흰바위로, 쪽빛하늘로 등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이 있어 내가 사는 곳을 더 아름답게 한다.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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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집 · 서울』 2021-7월(237)호 <내가 사랑하는 우리말 우리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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