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괴테와의 대화(발췌)/ 김석희(번역가·소설가)

검지 정숙자 2021. 6. 12. 03:51

 

    괴테와의 대화(발췌)

 

    김석희/ 번역가 · 소설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 Woifgang von Goethe, 1749-1832, 83세)를 여기서 새삼 소개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괴테는 독일의 작가(시인 · 소설가 · 극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며, 바이마르 공국에서 재상을 지낸 정치인이었고, 이처럼 다방면에 걸친 활동과 업적 때문에 르네상스 이후 가장 걸출한 전인적 인간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괴테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파우스트』같은 걸작의 작가로서 압도적인 명성을 누리는 바람에 문학 이론가로서의 평가는 다소 간과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완성하고 낭만주의 문학을 주도한 창작자이자 이론가였다.

  괴테의 문학 이론은 그의 생애와 문학작품만큼이나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때문에 그의 문학 이론에 대해서는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의 문학관은 청년기 · 중년기 · 노년기가 각각 다르며, 더구나 이들 각 시기 중에서도 몇 번씩 달라진다. 괴테의 문학 비평은 독립된 개별 논문 외에도 『시와 진실』『서동시집』『괴테와의 대화』등의 책에서 볼 수 있다.

  『괴테와의 대화』(Gesprache mit Goethe, 1836)는 숭배자인 젊은 문학도 요한 페터 에커만(Johan Peter Eckermann, 1792-1854, 62세)이 개인 비서로 일하면서 1823년부터 괴테의 임종 때까지 10년 동안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저술은 문학에 대한 괴테의 내적/외적 고백뿐만 아니라, 인생과 예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상까지도 폭넓게 담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괴테가 만년에 스스로 달성한 하나의 기념비적인 전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대한 내용 속에서 문학 이론에 관한 대목만 추려내는 작업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 참고할 책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 『Classic Writings on Poetry』(William Harmon 편, 2003)와 『世界の詩論』(窪田般彌 편, 1999)이 그것이며, 우리말로 옮기는 데에는 존 옥센포드(John Oxenford, 1812-1877, 65세)의 영역을 참조했다. (p. 88-89)

 

  1829년 4월 2일

  "나는 고전적인 것을 건전한 것이라고 부르고, 낭만적인 것을 병적인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니벨룽겐」*13)이나 호메로스의 작품은 고전적이다. 둘 다 건전하고 발랄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문학 대부분은 낭만적인데, 새롭기 때문이 아니라 나약하고 쉽게 상하고 병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일컫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대의 것은 오래됐기 때문에 고전적인 것이 아니라, 힘차고 신선하고 즐겁고 건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런 특색을 근거로 하여 볼 때, 고전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의 구별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p. 98)

   13) 게르만 신화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독일의 전설적인 왕족 니벨룽을 시조로 하는 초자연적인 난쟁이족) 전설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이다. 

 

  1830년 3월 21일

  "요즘 들어 세상에 퍼져 논쟁과 반목을 일으키고 있는, 고전적인 문학과 낭만적인 문학에 대한 개념은 원래 나와 실러의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문학에서 객관적인 묘사의 원칙을 지켰고, 이 원칙만을 인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매우 주관적인 묘사에 치중한 실러는 자신의 방식이 옳은 것이라 여겼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소박한 문학과 감상적인 문학'15)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는 내가 나 자신의 본의와는 달리 낭만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의 「이피게니에」는 감정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것처럼 고전적이 아니고 고대 정신에 따른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슐레겔 형제가 이 개념을 받아들여 한층 더 발전시켰기 때문에, 이제는 온 세상에 퍼져버려 누구나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관해 언급하게 되었다. 50년 전만 해도 아무도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는데." (p. 100-101)

  15) 논문에서 실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작가와 자연 너머의 이상세계를 찾는 작가를 구별하고 있는데, 전자는 소박 문학의 작가로서 여기에는 호메로스를 바롯한 고대 작가들이 속하고, 후자는 감상 문학의 작가로서 여기에는 원칙적으로는 현대(실러의 당대) 작가들이 속한다. 이 논문은 『문학청춘』 다음호에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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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문학청춘』 2021-봄(47)호 <세계시론산책 ⑤> 에서

 * 김석희/ 1952년 제주 출생, 서울대학교 불문과 졸업, 동대학원 국문학과 중퇴,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한때 창작과 번역을 병행했으나 2000년 이후에는 번역에만 종사하여, 영어 · 불어 · 일어를 넘나들면서 허먼 멜빌의『모비딕』, 헨리 소로의『월든』, 알렉상드르 뒤마의『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20권),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