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문학을 하는 이유(발췌)/ 신규호

검지 정숙자 2021. 4. 21. 14:02

<권두언/ 이 계절의 언어> 中

 

    문학을 하는 이유(발췌)

 

    신규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일상 언어의 한계는 작품을 창작하려는 문인, 예술가들에게 그것을 극복하고  초월해야 할 당위성을 부여한다. 표현하고 싶은 남다른 복잡, 미묘한 생각과 느낌을 지닐수록 기존의 언어를 초극해야 한다는 운명에 놓이기 때문이다. 작가 중에는 창작 과정에서 언어 초극의 정도가 구극에 이르면, 아예 언어 질서를 무시하게 되어 '해체'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무의미시나 해체시, 누보 로망, 앙띠 로망(반소설), 추상화, 팝 아트, 아르누보, 전자음악, 현대극 등 문학과 미술, 음악의 모든 영역에서 최대한 언어 질서를 벗어난 난해한 작품을 창작하기에 이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술이나 음악의 경우에도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작품의 번호, 제작 일자 등)조차 언어가 얼마나 끈질기에 이들 창작 과정에 개입되는지 알게 한다. 

  이처럼 언어는 인간의 독창적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기에는 지극히 불완전하고 부족한 수단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초극되고 부정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도를 닦는 수도승들조차 면벽한 채 무념무상(언어 지우기)의 경지에 투신한다. 이는 언어가 인간을 가두는 감옥(?)임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더구나 문인들은 직접적으로 언어만을 붙들고 싸우는 최전선의 창작 일꾼들임을 생각할 때, 인간세계의 알파와 오메가인 언어에 배전의 관심을 기울여 창작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p.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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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한국문학인』 2020-겨울(53)호<권두언/ 이 계절의 언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