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소*
정숙자
무성한 잎 모두 놔두고 왜 메마른 가지에 앉아 있을까
후박나무 기대어 홀로 어딘가 바라보는 새
야생이란, 조심성이란 저런 것일까
제 몸빛 꼭 닮은 삭정이를 골라 앉다니! 목숨 부지하기 힘든 세상인 줄 익히 안다는 거지. 우연히 눈에 띈 고갯짓 아니었다면, 나도 저게 새인 줄 몰랐을 거야.
(무슨 생각 저리 깊을까?)
벌써 20분째 미동도 없이
저이가 혹 놀랄까, TV도 켜지 않고, 앨범에 담고 싶은 충동도 접고··· 숨죽여 바라보는 유리창 한 겹 사이··· 내 모습 또한 저이와 다르지 않다. 저이가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나대로 저이 앞에 무심無心을 다 쏟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가끔은 깃을 다듬네!)
몇 해 전 저기서 부화하여 날아간 직박구리는 아닌지. 서운했던 내 마음 늦게나마 돌아본 건 아닌지. 저리도 골몰하다니! 긴한 사연이 생긴 건 아닌지. 또 5분이 지워졌건만 그저 그대로 앉아만 있네.
꿈에라도, 강 건너간 그이가 요즘 집안일 눈에 밟혀 찾아온 건 아닐까. 저 후박나무와 이 집을··· 찾아올 혼이라면 그이밖에 더 있을까. 여기서 20년 넘게 살다 간 그가 아니라면 저리 오래··· 하염없을 순 없다.
벌써 또 40분이 지났는데,
내 책상과 일직선 구도의 나무와 새, 쌀이라도 몇 톨 챙겨주고 싶지만··· 나도 아스라이 앉아만 있다. 불귀객 된 지 어느새 8년. 그이가 살았을 땐 오직 일인一人이더니, 이제 곤충으로 새로도 때때로 몸 빌려 오네.
-전문-
* 꼰소: 꼰대와 소녀의 합성어(필자의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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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2020-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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