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륜風輪
정숙자
바람은 우리의 눈 속에 있다. 저마다의 눈 속에서 일어나고 불붙고, 각종 바퀴를 굴려 난바다를 건너가기도 한다. 협곡에 갇히거나 부딪쳐 파열하는가 하면 폭포에 섞여 울부짖는 날개를 허공에 흩뿌리기도 한다.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에 의해
다차원을 건너온 바람이 한 겹 창문을 위협하는 밤, 신이 세운 건축물 고요를, 뼈대 실한 바큇살이 맹공하는 밤, 그 급습보다 빠른 정동은 우리의 문밖, 몸 밖이 아닌 우리의 눈꺼풀 밑 눈동자 가장자리에 낀다.
구식이었던가? 속 앓던 카프카가 사라지고
너무 신중했던가? 생각 많던 칸트도 물러가고
서로 선하기를 바랐던 키케로도
서풍에 실려 돌아가고, 배부른 자들의 독설만이 난무하는 지구 진화의 최전선 오늘 은, 온통 여기 저기 거기 이제 곳곳마다 투명 바리케이드. 발 디딜 틈도 없이 비쳐들고 날아드는 속임수와 비수와 doxa.
누가 다 먹어 치웠는가?
아무리 급하기로, 허겁지겁
달빛 은은한
별빛 아스라한
쪽빛과 이슬까지를 다 퍼먹고 파먹고 드디어 체했구나. 이 빈곤과 위기를 치료할 정신과 의사들 다시 메스를 챙기자고 저 멀리서 회의하는 데카르트, 사르트르, 훈데르트··· 바서··· 봤어? 못 봤어? 닫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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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0-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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