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조안 사벨 그릭스비(Joan Savell Grigsby: 1891-1937, 46세)
인간들의 어쩌면 신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꿈꾼 나무들이 있었다(전설)
새벽, 그리고 정원이 잠을 깨고
아침 안개가 잎들의 구름 퍼질 때도
은행나무는 꿈에서 꿈틀거린다
정오의 조수와 고동치는 열기 가지들은 뻗어
불탄 갈색 잔디 위에 시원한 초록 덮개를 벌린다
치유의 천정 깊이 그림자는 눕고
때로는 까치날개의 청색빛이
눈 속에 빛나거나 초록 잎새가
샘 위의 잿빛 너렁바위에 떨어진다
아직도 나무는 기억의 안개 속에 꿈꾼다
한때는 깎은 제단에 여인들이 와서
알지 못할 소원을 나무에게 웅얼대고
푸른 망토는 별빛 속에 빛났다
그리고 달이 뜨고 정원으로 비쳐
진홍빛의 희생 불꽃
은행나무 옆에 죽은 남자들을 위해 태웠다
흰옷 입은 애도자의 숙연한 주문이 읽히는 동안
바람처럼 잎사귀들 속에서
북과 종소리가 파열했다
아직도 잎은 기억의 안개 속에 꿈꾼다
그리고 이 초록색 가지들은 팔처럼 하늘 아래
뻗으면서 세상을 통째 접으려 한다
그 깊은 그림자 베일로
인간의 외로운 영혼들을
더 깊은 영혼의 평정 속으로 모으려고
저기 나무들 아! 이것 하나
인간보다 더 정열적으로 그들은 사랑하고 서로 안다
마음의 배고픔은 생명을 구하고
항상 너무 큰 것을 찾아가고
항상 너무 먼 곳을 홀로 간다
그들은 사랑하고 이해하고 언제나 평화롭다
거대한 가지들은 지금도 멀리서 숨쉬고
변덕스런 바람과 바뀌는 하늘 너머
일몰과 새벽별 너머
황금색 도시, 상아벽의 금빛 도시자락.
-전문, 『PEN문학』 152호, 2019. 11-12월호, 42~43쪽
* 블로그주: 이 시의 원문 및 <작가의 생애> <작품 속으로> 등 상세 내용/ 89~100쪽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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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고 지음 『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 세계의 책속에 피어난 한국 근현대 3』 에서/ 2020. 7. 17. <와이겔리> 펴냄
* 조안 사벨 그릭스비(Joan Savell Grigsby: 1891-1937, 46세)/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여성 시인, 한국에 와서 1년간 살면서 시를 짓기도 하고 한국시조를 영어로 번역하여 사화집 『The Orchid Door(난초의 문)』 으로 엮어냄. 1929년 초 포드자동차 영업담당 책임자로 서울지사에 근무하게 된 남편을 따라 조선에 입국하였다.
* 최종고崔鍾庫/ 1947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 법대 졸업,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대학에서 박사학위 받은 후 모교 서울법대에서 33년간 법사상사를 가르쳤다, 많은 학술서를 저술하여 2012년 삼일문화상 수상. 2013년 정년 후에 인생의 대도大道라는 생각으로 시인 · 수필가로 등단, 『괴테의 이름으로』(2017) 등 시집과 문학서를 내었다. 현재 <한국인물전기학회>, <한국펄벅연구회>를 운영하고 <국제PEN한국본부>, <공간시낭독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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