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숨바꼭질/ 바스코 포파 : 오민석 옮김

검지 정숙자 2020. 8. 13. 02:47

 

 

    숨바꼭질

 

    바스코 포파(V. Popa)

 

 

  누군가 다른 사람을 피해 숨는다

  그의 혀 밑에 숨는다

  다른 이가 그를 땅 밑에서 찾는다

 

  그는 그의 이마 위에 숨는다

  다른 이가 그를 하늘에서 찾는다

 

  그는 자신의 망각 속으로 숨는다

  다른 이가 그를 풀밭 속에서 찾는다

 

  그를 찾는 것이 보인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곳은 없다

  그는 제 자신을 잃고 있는 것을 본다

    -전문-

 

 

  비평의 실제 / 4. 바흐친으로 시 읽기(발췌)_ 오민석/ 시인, 문학평론가  

  바스코 포파는 초현실주의와 전통적인 세르비아의 전통적인 민속 담론을 결합해 구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 모더니즘 문학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시인으로 유명하다. 위 시는 그의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이를 Homage to the Lame Wolf』(오민석 역, 문학동네, 2006)에 나오는 시이다. 이 시에서 각 행의 문장들은 우리가 일상행활에서 사용하는 '1차적 스피치 장르'에 속하는 발화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라는 '2차적 스피치 장르'에 들어오면서 이것들은 일상 언어로서의 성격을 상실한다. 이 시의 화자는 숨는 "그"와 "찾는" "다른 이"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러므로 보고(reporting)의 대상이 보유한 언어와 그것을 보고하는 언어 사이의 대화가 존재한다. 모든 보고 문학은 원료인 '사실 언어'와 그것을 전하는 '전하는 언어' 사이의 대화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피해 숨는다"는 1차적 스피치 장르 언어는, 그것에 이어지는 문장 즉 "그의 혀 밑에 숨는다"는 또 다른 1차적 스피치 장르 언어를 만나면서 자신의 고요한 '일상성'을 상실한다.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혀 밑에 숨"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런 현상은 일상 담론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문장들 사이의 이 불가능한 접속, 현실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대화가 '시'라는 '2차적 스피치 장르'를 만들어낸다. 그러할 때, 여기서 말하는 "숨바꼭질"은 실제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의미망을 생산한다. "다른 이"는 숨는 "그"를 계속 엉뚱한 곳에서 찾고, 숨는 "그"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상황은 도처에서의 '드러남'("그가 보이지 않는 곳은 없다")으로 역전된다. "그"는 숨으려다 오히려 "제 자신을 잃고 있는 것을 본다". 이 시는 일상 언어를 2차적 스피치 장르에 끌어들여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를 변형시키고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1차와 2차 스피치 장르 사이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숨바꼭질"이라는 "단순한" 놀이를 이용하여 "복잡한" 자기 탐구의 철학을 보여준다. 바흐친의 말대로 "우리들의 발화의 표현은 이 발화의 지시적이고 의미론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동일한 주제에 대한 타자들의 발화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위 시 속의 화자는 이런 의미에서 지시적 내용만을 가지고 있는 1차적 발화에 대해 2차적 발화를 생산하는 타자이다. (p. 시 253/ 론 25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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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동네』 2020-8월(통권 88/ 종간)호 <비평의 실제/ 4. 바흐친으로 시 읽기 >에서 

  * 오민석/ 1990년 『한길문학』으로 시 부문 등단, 1993년《동아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굿모닝 에브리원』『기차는 오늘 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등, 문학이론서『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문학연구서『저항의 방식: 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송해 평전『나는 딴따라다』『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집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에세이집『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등, 現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