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로베로 데스노스 : 조재룡 옮김

검지 정숙자 2020. 8. 12. 02:48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로베로 데스노스

 

 

  오늘 나는 내 동료와 산책을 했다,

  비록 그가 죽었지만,

  나는 내 동료와 산책을 했다.

 

  꽃이 피어난 나무들이 아름다웠다,

  그가 죽던 날 눈이 쌓였던 저 밤나무들.

  내 동료와 함께 나는 산책을 했다.

 

  오래전 장례식에

  부모님은 당신들만 가셨다

  나는 내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느꼈다.

 

  지금 나는 적다고 할 수 없는 망자들을 안다,

  나는 장의사들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관에는 다가가지 않는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오늘 나는 하루 온종일

  내 친구와 산책을 했다.

  그는 내가 조금 더 늙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조금 더 늙었다고, 하지만 그는 내게 말했다 :

  어느 일요일이나 어느 토요일

  자네도 또한 내가 있는 곳으로 올 거야,

 

  나는 그때, 꽃이 활짝 핀 나무들을, 저 다리 아래로

  흐르고 있는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내가 혼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나는 사람들 사이로 되돌아왔다

     -전문-

 

 

  * 번역 노트 : 번역에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는 이 시는 너무 평범해서 어렵다. 가령 시제는 항상 어렵다. 복합과거는 무엇으로 표현해도 한국어에서는 항상 부족하거나 밋밋하다. 전치사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 더 늙었다고, 하지만 그는 내게 말했다" 영어로는 'but'으로 번역될 이 'mais'는 항상 애매하다. '하지만'으로 옮겨 놓았지만, 맥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차라리 '게다가', '더구나'가 더 나은 듯하다.

  '번역에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이 양자를 구별한 현명함을 제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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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 2020-8월(종간, 통권 88)호 <조재룡의 자아비평/ 비평 메모    스크래치>에서

  * 조재룡/ 2003년 『비평』으로 평론 활동 시작, 저서 『시는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한 줌의 시』 『의미의 자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