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로베로 데스노스
오늘 나는 내 동료와 산책을 했다,
비록 그가 죽었지만,
나는 내 동료와 산책을 했다.
꽃이 피어난 나무들이 아름다웠다,
그가 죽던 날 눈이 쌓였던 저 밤나무들.
내 동료와 함께 나는 산책을 했다.
오래전 장례식에
부모님은 당신들만 가셨다
나는 내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느꼈다.
지금 나는 적다고 할 수 없는 망자들을 안다,
나는 장의사들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관에는 다가가지 않는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오늘 나는 하루 온종일
내 친구와 산책을 했다.
그는 내가 조금 더 늙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조금 더 늙었다고, 하지만 그는 내게 말했다 :
어느 일요일이나 어느 토요일
자네도 또한 내가 있는 곳으로 올 거야,
나는 그때, 꽃이 활짝 핀 나무들을, 저 다리 아래로
흐르고 있는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내가 혼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나는 사람들 사이로 되돌아왔다
-전문-
* 번역 노트 : 번역에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는 이 시는 너무 평범해서 어렵다. 가령 시제는 항상 어렵다. 복합과거는 무엇으로 표현해도 한국어에서는 항상 부족하거나 밋밋하다. 전치사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 더 늙었다고, 하지만 그는 내게 말했다" 영어로는 'but'으로 번역될 이 'mais'는 항상 애매하다. '하지만'으로 옮겨 놓았지만, 맥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차라리 '게다가', '더구나'가 더 나은 듯하다.
'번역에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이 양자를 구별한 현명함을 제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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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 2020-8월(종간, 통권 88)호 <조재룡의 자아비평/ 비평 메모 스크래치>에서
* 조재룡/ 2003년 『비평』으로 평론 활동 시작, 저서 『시는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한 줌의 시』 『의미의 자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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