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김재혁_불투명한 주변세계 속에서...(발췌)/ 엉겅퀴 뿌리 아래에는 : 페터 후헬

검지 정숙자 2020. 5. 11. 17:58



    엉겅퀴 뿌리 아래에는


    페터 후헬(독일, 1903-1981, 78세)



  엉겅퀴 뿌리 아래에는

  언어가 살고 있다,

  얼굴을 들지 않은 채

  돌투성이 땅 속에,

  언어는 언제나

  불을 위한 빗장이었다.


  그대의 손을

  이 바위 위에 얹으라.

  금속의 단단한

  나뭇가지가 떤다.

  그러나 여름은

  깨끗이 치워졌고,

  기한도 끝났다.


  교목 아래 잡초 사이에는

  그림자들이

  포획의 그물을 쳐놓고 있다.

   -전문

 


  ▶ 불투명한 주변세계 속에서 쓰여지는 자연시(발췌)_ 김재혁/ 시인

  페터 후헬(1903-1981, 78세)은 지금까지 국내에는 거의 소개가 되지 않은 상태에 있지만 독일 현대 시사적詩史的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문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독일 비평계 및 연구계에서는 보통 그와 함께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파울 첼란, 귄터 아이히, 칼 크롤로브, 그리고 잉게보르크 바하만 등을 이야기한다./ 작가 페터 후헬은 곧 시인 페터 후헬을 이른다. 이는 그의 얼마 안 되는 산문 작품과 방송극이 그의 젊은 시절의 친구 귄터 아이히라든가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경우와는 달리 그의 전체 작품에서 단지 주변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이기 때문이다. 바꾸어서 말하면 그는 오랜 문학 활동 기간을 통해서 줄곧 시인으로서의 길만을 걸었다는 뜻이다./ 모든 시인들이 자신이 개성 있는 시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듯이, 후헬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시인이다. 그는 결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유행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는 금세기 초 독일 문학계를 강타한 표현주의 동시대인들의 격정의 외침을 거부하였으며, 그의 고통은 결코 격정으로 돌출되지 않는 조용한 것이었다. 이처럼 독특한 그의 문학세계는 독일의 문학비평계가 그에게 바쳐진 두 개의 상반되는 토포스를 언급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 하나는 그가 이른바 자연시의 대표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자연시의 대표자로 보는 것은 만성적으로 널리 유포된 오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반되는 견해가 등장하게 된 원인은 그의 작품이 지니는 양면성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 후헬의 시에서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경험한 전원풍경에 기초한 '포근함'과, 제2차 세계 대전과 전쟁 후 동독의 정치체제 하에서의 정신적 도피의 길에서 느낀 '집 없음의 상태'의 대위법적 구조가 발견된다. 따라서 후헬을 둘러싼 두 가지의 견해는 문학비평의 영역에서는 각각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p. 시 183/ 론 191-192)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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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0-4월호 <이달의 리바이벌 2>에서

  * 김재혁/ 시인, 고려대 독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