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하여-위하여
블라스 데 오떼로(스페인 1916-1979, 63세)
나는 쓴다
필요에
의해
세상의
사악함
그리고
피를
지우는데
(조금이나마)
공헌하기
위해
(지금 상처투성이인 스페인도
포함해서)
-전문
▶ 폐허에서 부르는 보헤미안의 노래(발췌)_ 정지원
블라스 데 오떼로(Blas de Otero(1916-1979, 63세)는 바스크인으로 스페인 북부 비바오에서 태어났다. 스페인의 경우에도 뛰어난 시인은 대체로 남도 지방 출신인 경우가 많은데 오떼로는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고향은 버리고 싶어도 차마 버릴 수 없는 가족과 같은 곳이었다. 13세에 큰형이 장티푸스로 죽는 것을 경험하고, 3년 뒤엔 아버지마저 세상을 등진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 소년에게 죽음은 평생의 화두가 된다. 현실적으로는 이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어머니와 누이를 보살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한다. 이후 그에겐 가장으로서의 의무감과 시인으로서의 소명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취직을 해 가족을 돌보려 할 무렵 운명은 뜻하지 않은 곳으로 그의 손을 이끈다. 3년 동안이나 계속된 스페인 내란이 그때 막 발발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것이다. 오떼로의 눈에 비친 세상은 꺾인 나무와도 같았고 자신들은 뿌리 뽑힌 세대로서 폐허를 견디는 운명밖엔 타고나지 못한 듯했다. 그가 고향에서보다 자유로움을 느꼈던 마드리드에서 다시 인문학 과정에 입학한 것은 전쟁 후의 일로, 인문학 교수 자리가 자신이 소명인 시작 활동과 가족 부양의 의무감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으나, 1944년 봄 결국 중퇴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학생의 창조적 자질을 키워주지 못하는 대학교육 현실에 환멸을 느꼈고, 무엇보다도 그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하던 여동생이 중병으로 병석에 누웠기 때문이다. 고향의 현실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했고, 오떼로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결심 하에 그때까지 써두었던 시를 몰래 불 태운 뒤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빠져든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한 이 시기를 거치며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받아들인다. 어두운 터널과도 같은 시기를 거친 시인은 『잔인하리만치 인간적인 천사(Angel fieramente humano)』(1950), 『양심의 타종(Redoble de conciencia)』(1951) 같은 시집을 펴내 굵직한 문예상을 휩쓴다. 엄격하리만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이 시기를 거치면서 직접 신과 대면하고 싶어한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지난한 길이었다. 오떼로는 오감五感을 총동원해서 전신으로 신을 느껴보려 하고 그를 향해 필사적인 질문을 던지나, 신은 어떤 절규에도 응답하지 않으며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인간들을 살해할 만큼 무자비하다. 인간의 단말마적인 몸부림은 파격적인 기법 실험을 통해 형상화된다. 전통적인 시행 처리를 무시하고 과감한 행 바꾸기를 통해 신과 싸우는 인간의 필사적인 모습을 가쁜 호흡으로 담아낸다. 유사한 경향의 두 시집은 후일 각각의 제목의 앞머리와 뒷머리를 따서 『Ancia』(1958, Angel fieramente humano+Redoble de conciencia)라는 제목으로 재출판 되어 당대를 대표하는 시집으로 자리매김 된다. (p. 시 172/ 론 174-175)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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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2020-4월호 <이달의 리바이벌 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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