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점화전(點火栓)

검지 정숙자 2020. 4. 10. 01:18



    점화전點火栓


    정숙자



  가지 않는 시간을 지켜본 적 있다


  꼼짝도 하지 않고 내 앞에 박혔던 시간


  24시간 아래 천 년이 지나가던

  그 슬픔을 견뎌본 적 있다


  밀어도, 흔들어도

  소용없던 그    시간


  이    시간이


  왜… 또… 찾아왔을까?


  온 신경을 묶어버린 이 밧줄이 결국 나를 끌고 갈 것이다 어떤 기쁨도 주어지지 않는 곳 그 죽음의 문 앞으로 침묵만을 펼치며, 죽이며    죽이며    내 얼굴에 물 뿌리며 끌어갈 것이다


  바위와 비탈의 시간

  도무지 이겨낼 장사가 없는

  절대 무력의 신 앞에


  날개도 발도 잃어버린 이 병든 시간이

  그러나, 마침내 다른 시간을 깨울 것이다


  어제오늘이 아니라


  언제든


  몹시 익은 허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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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티카』 2020-상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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