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화전點火栓
정숙자
가지 않는 시간을 지켜본 적 있다
꼼짝도 하지 않고 내 앞에 박혔던 시간
24시간 아래 천 년이 지나가던
그 슬픔을 견뎌본 적 있다
밀어도, 흔들어도
소용없던 그 시간
이 시간이
왜… 또… 찾아왔을까?
온 신경을 묶어버린 이 밧줄이 결국 나를 끌고 갈 것이다 어떤 기쁨도 주어지지 않는 곳 그 죽음의 문 앞으로 침묵만을 펼치며, 죽이며 죽이며 내 얼굴에 물 뿌리며 끌어갈 것이다
바위와 비탈의 시간
도무지 이겨낼 장사가 없는
절대 무력의 신神 앞에
날개도 발도 잃어버린 이 병든 시간이
그러나, 마침내 다른 시간을 깨울 것이다
어제오늘이 아니라
언제든
몹시 익은 허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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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티카』 2020-상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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