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배세복_개별자에게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꽃 속의 너트 :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0. 4. 4. 13:16

 

 

 

  시인의 방《蒜艾齋 산애재2020-3-16 (월)

  [ 배세복이 읽은 시편 · 5 ]  

 

 

    꽃 속의 너트

 

    정숙자

 

 

  꽃 속에 너트가 있다(면

  혹자는 못 믿을지도 몰라. 하지만 꽃 속엔 분명 너트가 있지. 그것도 아주아주 섬세하고 뜨겁고 총명한 너트가 말이야.)

 

  난 평생토록 꽃 속의 너트를 봐 왔어(라고 말하면

  혹자는 내 뇌를 의심하겠지. 하지만 나는 정신이상자가 아니고 꽃 속엔 분명 너트가 있어. 혹자는 혹 반박할까? '증거를 대 봐, 어서 대 보라고!' 거참 딱하구나. 그 묘한 걸 어떻게 대 볼 수 있담.)

 

  꽃 속에 너트가 없다면 아예 꽃 자체가 없었을 것(이야!

  힘껏 되받을 수밖에. 암튼 꽃 속엔 꽉꽉 조일 수 있는 너트가 파인 게 사실이야. 더더구나 너트는 알맞게 느긋이 또는 팍팍 풀 수도  있다니까.)

 

  꽃봉오릴 봐 봐(요

  한 잎 한 잎 얼마나 단단히 조였는지. 햇살 한 올, 빗방울 하나, 바람 한 줄기, 먼 천둥소리와 구름의 이동, 별들의 애환까지도 다 모은 거야. 그리고 어느 날 은밀히 풀지.)

 

  꽃 속의 너트를 본 이후(부터

  '꽃이 피다'는 '꽃이 피-였다'예요. 어둠과 추위, 폭염과 물것 속에서도 정점을 빚어낸 탄력. 붉고 희고 노랗고 파란 피의 승화를 꽃이라 해요. '꽃이 피다!' 그렇죠.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늘을 지우는 꽃(을

  신들이 켜놓은 등불이라 부를까요? 꽃이 없다면 대낮일지라도 사뭇 침침할 겁니다. 바로 지금 한 송이 너트 안에 한 줄기 바람이 끼어드는군요. 아~ 얏~ 파도치는 황홀이 어제 없던 태양을 예인합니다.)

   -전문,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파란, 2017)

 

 

  ▶ 개별자에게서 발견하는 아름다움_ 배세복/ 시인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 속에 존재하는 개개의 모든 개체는 개별자個別者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별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간혹 가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개별자도 있다. 예를 들면 산 속에 홀로 피었다 지는 야생화, 이름조차 헷갈리는 작은 새들, 또 사회 속에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소시민들, 이들은 과연 하찮은 존재일까?
  「꽃 속의 너트」에서 시인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총 6연으로 된 이 시는 병렬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꽃 속에 너트가 있다"라고 주장하는 화자가 있고, "증거를 대 보"라고 하는 청자가 있다. 화자는 계속해서 청자에게 그 "묘한" 증거를 연속으로 대고 있다. 병렬적 구성이지만 연이 계속될수록 시상이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그 '너트'는 1연에서는 "섬세하고 뜨겁고 총명하고", 2연에서는 "묘하고', 3연에서는 "조일 수 있게" 파여 있고, 4연에서는 "다 모은 거"고 5연에서는 "피의 승화"이고 6연에서는 "파도치는 황홀"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꽃'은 '볼트'가 아니라 '너트'일까?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위 시에서 '볼트'로 추정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6연(4연에도 등장)의 '바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바람'도 역시 자연이다. 결국 자연 자체가 '볼트'이자 '너트'가 되는 셈이다. 「꽃 속의 너트」에서 자연은 이와 같이 실체이고 모든 것을 갖춘 존재, 즉 '개별자〓자연〓신'과 같은 존재로 그려져 있다. 그러니 이 세상에 과연 하찮은 존재가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시인은 「꽃 속의 너트」를 통해 역설力說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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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세복/ 충남 홍성 출생, 2014년《광주일보》로 등단, 시집『몬드리안의 담요』. <VOLUME>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