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일보》2019-07-24 (수) / 최형심 시인 승인 2019-7-22 23:21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최형심(시인)
꽃 속의 너트
정숙자
꽃 속에 너트가 있다(면
혹자는 못 믿을지도 몰라. 하지만 꽃 속엔 분명 너트가 있지. 그것도 아주아주 섬세하고 뜨겁고 총명한 너트가 말이야.)
난 평생토록 꽃 속의 너트를 봐 왔어(라고 말하면
혹자는 내 뇌를 의심하겠지. 하지만 나는 정신이상자가 아니고 꽃 속엔 분명 너트가 있어. 혹자는 혹 반박할까? '증거를 대 봐, 어서 대 보라고!' 거참 딱하구나. 그 묘한 걸 어떻게 대 볼 수 있담.)
꽃 속에 너트가 없다면 아예 꽃 자체가 없었을 것(이야!
힘껏 되받을 수밖에. 암튼 꽃 속엔 꽉꽉 조일 수 있는 너트가 파인 게 사실이야. 더더구나 너트는 알맞게 느긋이 또는 팍팍 풀 수도 있다니까.)
꽃봉오릴 봐 봐(요
한 잎 한 잎 얼마나 단단히 조였는지. 햇살 한 올, 빗방울 하나, 바람 한 줄기, 먼 천둥소리와 구름의 이동, 별들의 애환까지도 다 모은 거야. 그리고 어느 날 은밀히 풀지.)
꽃 속의 너트를 본 이후(부터
'꽃이 피다'는 '꽃이 피-였다'예요. 어둠과 추위, 폭염과 물것 속에서도 정점을 빚어낸 탄력. 붉고 희고 노랗고 파란… 피의 승화를 꽃이라 해요. '꽃이 피다!' 그렇죠.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늘을 지우는 꽃(을
신들이 켜놓은 등불이라 부를까요? 꽃이 없다면 대낮일지라도 사뭇 침침할 겁니다. 바로 지금 한 송이 너트 안에 한 줄기 바람이 끼어드는군요. 아~ 얏~ 파도치는 황홀이 어제 없던 태양을 예인합니다.)
-전문-
■ 작가는 가느다란 줄기 끝에 화려하고 예쁜 꽃을 매달고 있는 식물을 보면서 꽃 속에 너트가 있다는 조금은 엉뚱한 상상을 했습니다. 먼저, 꽃 속의 너트가 "햇살 한 올, 빗방울 하나, 바람 한 줄기, 먼 천둥소리와 구름의 이동, 별들의 애환까지도 다 모"아서 꽃잎 "한 잎 한 잎"을 "단단히 조"여 작은 봉오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은밀히 풀"어 꽃 한 송이를 피워냅니다. 활짝 핀 꽃에다 "한 줄기 바람"을 휙 그으면 활활 타오르는 등불이 되는데, 그 덕분에 사방이 환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깜찍한 시입니다. (최형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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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외일보/ 2019년 7월 24일 (수)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최형심 시인 승인 2019.07.2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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